나의 어린 시절 - 낮잠 자고 일어나 이해인 수녀님의 '나무가 크는 동안' 시를 듣고

2019. 11. 10. 04:54일상 Alltag/하루하루가 모여 heute

2019년 11월 9일 토요일 저녁 7시 19분 베를린

 

 

 

나는 어릴 적 기억을 꽤나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이다. 자원 봉사 교육에 다녀와 낮잠을 잤다. 개운하고 포근한 느낌 그대로 일어나고 싶어 코끼리 앱 명상을 살펴보았다. 출근할 때 듣는 명상도 아니고, 자애 명상도 아니고, 걷기 명상도 아니고... 나에게 필요한 명상이 무엇인지 살펴보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 명상을 발견했다.

 

 

 

 

명상 카테고리 가장 아래에 있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명상

 

이해인 수녀님의 시 명상은, 코끼리 앱의 명상 카테고리 가장 아래쪽에 있다. 제일 먼저 만들어진 명상이라 그런 가 보다. 새로운 명상이 가장 위쪽에 보이니 말이다. 이해인 수녀님이 낭독하시는 시를 들었다. 나무가 크는 동안 아이의 키도 컸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마침 낮잠 꿈속에 조카들이 나왔었다. 수영장과 놀이공원이 함께 있는 곳에서 둘이 작은 목마를 타고 있었다. 첫째 조카가 앞에, 둘째 조카가 뒤에 앉았다. 목마가 회전을 하니, 아직 어린 둘째 조카의 손과 얼굴이 회전하는 쪽으로 쏠려 귀여운 모습이 연출되었다. 내가 둘째 조카만 할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나무가 크는 동안 - 이해인

 

나무가 크는 동안

아기의 키도 조금씩 커 갑니다

꽃이 피고 지는 동안

아기의 마음도 조금씩 커 갑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겨울 가을 여름 봄

자꾸 가고

자꾸 오고

나무가 크는 동안

아기가 크는 동안

 

엄마 아빠에겐

흰 머리와 주름살 더욱 많아지시고

"아니, 얘가 언제 이렇게 컸지요?"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해요"

노래처럼 외우는 동안 

아기는 조금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갑니다

그래서 어느날

오월의 푸른 나무처럼

엄마아빠 곁에 서겠지요

 

참 신기하지 않아요?

나무가 크는 동안

아기도 크는 것이

아기가 크는 동안

나무도 크는 것이


내가 살던 곳이 떠올랐다. 5살에서 여섯 살까지 살았던 M동 M 아파트가 생각났다. M 아파트 거실 입구에는 턱이 있었다. 거실과 주방을 구분하던 미닫이 문을 터서 문턱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앉을 수 있을 만큼 높은 문턱이었다. 바닥 장판은 살구색이었고 무늬가 있었다. 커다란 사각형 안에 꽃 형상과 비슷한 문양이 있었다. 그곳에 살면서 유치원에 처음 등원했으니 나이가 다섯 살 반 정도 되었을 것이다. 그 당시 준태, 기홍, 한이와 놀았다. (실명이 등장한다 ㅋㅋ 너무 오래전 이야기라 실명을 써도 될 것 같다) 우리가 함께 만나 놀았을 때는 내가 굉장히 어렸을 때였다. 유치원 가기 전부터 함께 놀았으니 5살 때, 내가 자동차를 좋아했었을 때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준태랑 기홍이는 같은 동 다른 층에 살았고, 한이는 앞 동에 살았다. 다른 층에 살던 준태와 기홍이 집에 가서 같이 놀자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한이에게는 남동생이 있었다. 한이 동생과 놀아주는 것이 좀 귀찮아서 신발을 일부러 반대로 (왼쪽 신발을 오른쪽 발에, 오른쪽 신발을 왼쪽 발에) 신겨주었던 미안한 기억도 떠오른다. 신발을 반대로 신었던 한이 동생은, 내가 밀어주는 그네를 타며 즐겁게 놀았다. 그 이후로 준태와 같은 유치원을 다녔고 한이는 이사를 갔다.

 

M아파트에서 살았을 때였는지 그 전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 것을 보면 그 전이겠지?) 우리 가족이 잠깐 이웃 도시에 살았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살았던 4-5층 아파트 복도 손잡이가 기억난다. 그 아파트는 상아색이었다. 

 

M 아파트에 살았었을 때 우리 집 뒤 L 아파트에는 막내 삼촌과 숙모가 사셨다. 숙모가 해주시던 햄 구이가 아주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엄마는 햄을 구워주지 않았다. 태어나 처음 먹어 본 계란에 부친 햄은 아주 맛있었다. 

 

긴 복도형 아파트인 M 아파트에서 이웃 어른들께 인사를 잘한다고 칭찬을 받았다.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 더욱 즐겁게 인사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좋은 기억 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사람을 만나면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나의 인사에 감동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또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인데도 나도 모르게 반가움을 표시하고는 조금 난처했던 적이 있다. 나에게 반가운 인사는 자동반사적인 행동인 것 같다.) 앞 동에는 머리가 긴 엄마 친구가 사셨다. 이모라 불렀던 엄마 친구의 차를 타고 엄마와 함께 어디로 갔던 기억이 났다. 이모는 나를 참 예뻐해 주셨다.

 

유치원에서 돌아와 거울을 보고 울었던 사건도 떠올랐다. 유치원 끝나고 집에 오면 엄마가 항상 계셨지만 그날은 엄마가 안 계셨다. 집에 들어와서 안방으로 들어가 엄마 화장대 거울을 보았다. 갈색 서랍과 반원 모양의 큰 거울이 있던 화장대였다. 거울을 보는데 문득 왼쪽에는 악마가 있고 오른쪽에는 천사가 있다는 유치원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가톨릭 계열 유치원이었다.) 어깨 뒤 왼쪽에는 날개 달린 악마가 있고 오른쪽에는 천사가 있어서, 나쁜 일을 하면 악마가 좋아하고 착한 일을 하면 천사가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이었다. 유치원 수녀님은 오른쪽 천사가 좋아하도록 착한 일을 많이 하며 지내라는 뜻으로 알려주셨겠지만, 어린 나는 악마와 천사가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믿었다. 엄마가 없는 집에 혼자 있는 것도 무서운데, 거울에 비친 내 뒤로 악마와 천사가 보일 것만 같아 더 무서워진 나는 엉엉 울었다. 화장대 거울을 보며 일그러진 얼굴로 울던 나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거울에 악마가 보일랑 말랑 했지만 결국 보이지 않았다. 천사도.

 

막내 고모가 나를 봐주시던 기억도 났다. 엄마 아빠가 바빠서 나를 봐주지 못하셨을 때 막내 고모의 미술 학원에 갔다. 미술 학원에는 두 개의 방이 있었고 그 사이는 유리 문이 있었다. 

 

유치원 때 기억인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땐 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하늘이라는 친구가 막내 고모 미술학원과 가까운 시장 근처 주택에 살았다. 하늘이 집에 놀러 갔다가 시장으로 나왔던 기억도 난다. 

 

S동으로 이사를 가서 살았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는 내가 유치원을 다녔고 동생이 태어났으니 6살 때였을 것이다. S동으로 이사를 하고 언니와 처음으로 둘이 좌석 버스를 타고 S동 집으로 왔던 기억이 난다. 아침에는 유치원 버스가 오는 곳으로 가서 줄을 섰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엄마가 데려다주었지만 우리 엄마는 나를 굉장히 독립적으로 키웠으므로 나는 매일 아침 혼자서 버스가 오는 곳까지 걸어갔다. 

 

오늘은 살았던 곳을 중심으로 기억을 떠올려 보았는데 유치원 기억도 많다. 유치원에서 했던 낙하산 놀이가 참 재미있었다.

 

어릴 적 기억들을 기록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어릴 시절 기억이 더 많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며 새로운 기억이 들어왔다. 특히 독일에 와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니, 뇌가 새로운 기억들을 잘 보존시키기 위하여 아주 어렸을 때 기억은 저 안 쪽으로 밀어 놓은 것 같다. 그래서 어린 시절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나 어린 시절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이렇게 기록해 놓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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