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말
- 이해인 -
장미 꽃잎에 숨어있던
시간이 내게 말했다
부드럽게 부드럽게 향기를 피워 올리기 위해선
날카로운 가시의 고통이
꼭 필요했다고
호두껍질 속에 숨어있던
시간이 내게 말했다
단단하게 단단하게
익어가기 위해선
길고 긴 어둠의 고통이
꼭 필요했다고
파도 속에 숨어있던
시간이 내게 말했다
많이 울어야만
출렁일 수 있다고
힘찬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그렇구나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시간 속으로
걸어가는
오늘의 기쁨이여
(출처: 이해인, 나를 키우는 말)
나는 말랑말랑한 사람이었다. 쉽게 친해지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말랑말랑해서 누군가 내게 상처 주는 말을 하면 깊숙이 박혔다.
독일에 와서 수없이 넘어지며 울었다. 그때마다 일어나는 법을 배웠다. 내가 가는 길에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 되었다. 아직도 헤어짐은 마음 아프지만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의 말랑말랑함은 유지하되 속은 단단한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나 내 옆에 와서 폭신한 쿠션에 고개를 기대 낮잠을 잘 수 있도록 :-)
.... 그러면 나는 키즈 카페의 폭신폭신한 기둥이 되고 싶은 건가?
에세이 형식의 글을 좋아한다. 시보다는 산문이 좋다. 이해인 수녀님의 산문집 꽃삽과 기다리는 행복을 읽다가 시집도 보게 되었다. 이제 조금씩 시의 맛을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
이어지는 글
2019/04/20 아픈 날의 일기, 이해인 - 베를린의 작은 섬
2019/05/05 독서 일기 :: 기다리는 행복, 이해인 (1)
2019/10/05 해인글방 - 머리카락의 기도, 이해인
2019/11/09 나의 어린 시절 - 낮잠 자고 일어나 이해인 수녀님의 '나무가 크는 동안' 시를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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