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블로그 :: 읽고 싶은 책으로 만든 서재 :: 아빠의 귀와 나의 독일어 - 문맹 (아고타 크리스토프)

2019. 3. 7. 18:10일상 Alltag/시와 글과 영화와 책 Bücher


독일에서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살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책은 종이책으로 받아보려면 오래걸리고 무엇보다 배송료가 비싸다. 정말로 읽고 싶은 책은 전자책으로 읽지만 나는 아직도 종이책이 좋다. 그래서 한국 가면 읽고 싶은 책을 즐겨찾기 메뉴에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추천받은 책, 인터넷 서핑을 하며 발견한 책, 뉴스레터를 읽다 발견한 책, 관심 있는 주제의 책으로 '읽고 싶은 책으로 만든 서재'(즐겨찾기 폴더 이름)를 만들었다. 


오늘 김민식 PD님 블로그에서 알게 된 책을 '읽고 싶은 책으로 만든 서재'에 꽂으며 블로그에 기록해보기로 했다.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읽고 싶었는지 기록해두면 나중에 책을 읽을 때 더 재미있지 않을까?





작가는 26살에 프랑스에 와 문맹이 되었다고 한다. 나도 25살에 독일에 와 독일어를 처음부터 배웠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은 프랑스어로 글을 결코 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쓸 것이다. _112쪽


Ich weiß, daß ich das Französische nie so schreiben werde wie die von Geburt französischsprachigen Schriftsteller, aber ich werde es schreiben, was ich kann, so gut ich kann. (Agora Kristof - Die Analphabetin: Autobiographische Erzählung)


나도 태어날 때부터 독일어를 쓰는 작가처럼 독일어를 결코 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말도 마찬가지다. 독일 사람처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독일에서 태어났니?" 질문도 듣지만 깊은 주제로 들어가면 독일 사람들은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래도 괜찮다. 나에게는 모국어인 한국어가 있지 않은가! 한국어를 이렇게 유창하게 말하고 읽고 쓰는데 (성인이 되어 배운) 독일어까지 독일사람처럼 하면 독일 사람은 바보라는 의미다. 







아빠와의 대화, 2014년 여름 한국


아빠: 요즘 오른쪽 귀가 잘 안 들려. 1:1 대화는 잘 들리는데 세 사람 이상 있을 때 상대가 빨리 말하면 잘 못 알아듣겠더라고. 괜히 대화의 흐름을 끊고 물어보기도 그래서 그냥 못 알아듣고 있을 때가 있어.

: 정말? 아빠, 나도 그래! 나도 독일어 할 때 1:1로는 다 이해되는데 여러 사람이 있으면 잘 안 들리더라. 그래서 나도 못 알아들을 때 질문을 해야 하는 건지 망설여져. 


아빠가 운전하고 엄마가 조수석에서 이야기하면 자동차 소음 때문에 가끔 아빠가 못 알아들으실 때가 있다. 그럼 엄마는 두 번 세 번 반복해 크게 말하시며 가끔 의도하지 않은 짜증이 섞일 때가 있다. 아빠가 처음으로 알아듣는 엄마의 말(엄마는 몇 번 반복해서 하는 말)에 짜증이 섞여 있는 것이다. 아빠는 이것이 조금 서운했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그 마음 잘 안다. 외국어를 하며 종종 겪는 일이다.


엄마에게 넌지시 가서


: 엄마, 아빠가 귀 때문에 엄마 얘기 한번에 못 알아들으시면 내 생각을 해. 우리 딸도 독일에서 말 못 알아들어 고생이 많겠다고. 독일 사람은 내가 못 알아들어도 두 번 세 번 친절하게 천천히 말해주거든. 엄마가 독일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아빠에게 다시 말씀드리면 어떨까?


독일어 덕분에 아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독일어가 완벽하지 않은 것은 아빠의 귀처럼 약간의 불편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이야기:


이 언어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운명에 의해, 우연에 의해, 상황에 의해 나에게 주어진 언어다.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_113쪽


Ich habe diese Sprache nicht gewählt. Sie ist mir aufgedrängt worden vom Schicksal, vom Zufall, von den Umständen. 

Ich bin gezwungen, französisch zu schreiben. Es ist eine Herausforderung. 

Eine Herausforderung für die Analphabetin.


처음 포스팅을 작성할 때는 한국어 인용구만 옮겨왔다. 생각해보니 프랑스는 독일의 이웃 나라였다. 분명 독일에도 책이 있겠다 싶었다. 

역시 독일에서도 유명한 책이었다. 프랑스어는 못하지만 독일어로 몇 줄 읽어보니 이 책의 느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간결하지만 힘이 있는 글이다. 작가가 군더더기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쓴 덕분에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이어지는 글- 독일어로 문맹 책을 읽게 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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