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5일 화요일 베를린
저녁 식사 전
공부와 핸드폰 Power Handy
공부를 하다 보면, 특히 코로나 시기에 공부를 하면 심심할 때가 있다. 다른 사람과 소통 없이 공부만 해서 그런 것 같다.
오늘 아침 8시부터 오후 1시까지 온라인 스터디에서 헬렌, 베아테, 헤자, 사라와 공부했다. 오후 2시부터는 라그나, 얀, 알레타, 한나와 공부했다. 알레타와 한나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갔고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은 나, 라그나, 얀 셋이었다. 스터디 마지막에 오늘 계획한 공부가 어땠는지 말하고 끝나는데 오늘은 대화가 길어졌다. 우리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다. 코로나 시기에 집에서 공부하고 논문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도 이 시기에는 학생이 아닌 사람들도 모두 조금은 외롭게 보낼 것이다.
사람들과의 대화가 필요했던 우리는 10분 동안 수다를 떨었다. 먼저 얀이 말했다. 오늘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아서 한 시간 정도 낮잠(Power Nap)을 자려고 했지만 핸드폰(Power Handy)만 했단다. 자신은 오늘 논문을 쓸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한 시간 핸드폰 볼 컨디션은 되었다고. 나는 얀의 Power Handy라는 표현이 재미있어서 웃었다. Handy는 독일어로 핸드폰이다.
내가 이어서 이야기했다. 컨디션 좋은 날엔 핸드폰을 보지 않고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는데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자꾸 핸드폰에 손이 간다고. 나도 오늘 몇 번 핸드폰을 보았고 문자도 보냈으며 친구에게 답장을 했다고 말했다.
라그나가 웃으며 말한다. 자신은 핸드폰이 옆에 있으면 자동으로 손이 가기 때문에 (Das ist totaler Automatismus!) 다른 방에 둔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말했다.
"나도 그거 아는데... 그렇게 해보기도 했는데 오늘은 핸드폰이 내 옆에 있었네."
딴생각 메모장 Ablenkungszettel
오늘 공부가 어땠냐는 나의 질문에 라그나가 답한다. 석사 논문을 쓰며 발견한 참고 문헌이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읽게 된단다. 자꾸 새로운 참고 문헌을 발견하게 된다고도 했다(Cooles Buch gefunden).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학사 논문을 쓸 때 참고 문헌이 너무 재미있어서 내 논문 주제와 큰 관련이 없는데도 자꾸 읽게 되더라. 참고문헌을 즐겁게 읽는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나 논문에는 제출기한이 있다. 필요한 참고 문헌만 계획한 시간에 읽어도 부족한 시간이다. 내가 이 고민을 가지고 있을 때 글쓰기 센터 선생님께서 Ablenkungszettel이라는 걸 알려주셨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딴생각 메모장' 정도 되겠다. 종이 위에 공부하며 떠오르는 딴생각을 적는 것이다. 공부를 방해하는 딴생각을 예로 들면
- 참고문헌 137페이지 너무 재미있음. 논문에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매우 흥미로움. 나중에 읽어보기
- 이메일 답장 보내기
- 프린트 잉크 사기
- 친구 생일 카드 사기
- 어제 읽은 책: 마음에 드는 구절 블로그에 쓰기
- 빨래하기. 오늘 안 하면 내일 입을 옷 없음.
처음에 이곳에 쓰는 내용이 사소한 줄만 알았다. 하지만 자꾸 쓰다 보니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블로그에 쓸 좋은 주제가 떠오르기도 하고, 점심을 먹으며 친구가 해준 주옥같은 말을 적기도 했다. 참고문헌을 읽다가 인턴을 해보면 좋을 곳을 발견하고 메모하기도 하고, 부모님께 생신 축하 전화를 해야 한다고 적기도 했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메모했다. 이 메모는 공부하는 시간에만 방해 요소로 생각되지 나의 일상에는 아주 중요한 일들이었다. 간직할 가치가 있는 메모였다. 딴생각 메모장을 쓴 지도 벌써 3년이 되었다.
가끔 딴 생각 메모장을 열어본다. 당시 내가 무슨 생각을 했고 무슨 일을 했으며 어떤 고민과 계획,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며 어떤 기쁨을 느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블로그에 올리는 글도 공부하는 시간에 보자면 딴생각이다. 나는 공부하는 시간에 블로그에 들어오지 않으려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블로그가 공부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공부가 어려워 막막할 때 블로그 글을 읽어본다. 과거에 비슷한 어려움이 있었을 때 내가 어떻게 그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공부 선배의 책을 발췌한 포스팅을 보며 힘을 내기도 한다.
공부 선배 포스팅
- 독서 카드 ::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이규천
현재 시각 저녁 6시 15분. 나는 오늘 학생으로서 하루를 성실히 보냈다. 이제는 나로 있는 시간이다. 좋아하는 것 하고 맛있는 거 먹으며 하고 싶은 걸 하는.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고 어제 빨아둔 옷을 개고 방 정리를 좀 해볼까 한다. 친구에게 문자도 보내고 부엌에 있는 하우스 메이트에게 인사도 해야지.
이어지는 글
'독일 대학과 새로운 학문 Uni > 외국인 학생 생존기 Studier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계 공부가 재미있네! (0) | 2021.02.16 |
---|---|
Good bye, Migrationshintergrund - tagesspiegel.de (0) | 2021.01.30 |
영어 이메일 - 교수님께 과제 제출 기한 연장 이메일 쓰기 (0) | 2021.01.05 |
끝났다, 세미나 페이퍼! - 첫 영어 학술적 글쓰기 (0) | 2021.01.01 |
아카데믹 라이팅 - 혼자 공부하기 Academic Writing (자가학습 링크) (0) | 2020.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