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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카드 -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이규천

by 통로- 2020. 1. 26.

2020.1.25 토요일 저녁 베를린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이규천 (수오서재)

 

로스쿨 첫 학기 시험을 보았을 때 실망스런 결과를 얻은 작은딸은 무척 낙심하며 힘들어했다. 딸의 공부 방식과 사고 패턴을 알고 있던 우리는 첫 몇 개월이 고비일 것이라고 예견했지만 딸이 어찌나 심하게 좌절하던지 몹시 걱정스러웠다.[...] 작은딸은 엄마의 등에 기대 소리 없이 울었다. 자신이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허망한 결과를 손에 쥐면 우리는 한없이 무너져 내린다. 평소에 우리는 실패를 수용하는 방법을 잘 배우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상황은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잘한다는 칭찬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은 자신의 나약함을 발견했을 때 더욱 더 치명적은 상처를 입는다.

삶은 실패와 실수의 연속이다. 스티브 잡스는 인생에서 찍는 모든 점은 미래로 연결된다고 했다. 나는 우리가 살면서 겪는 숱한 실수와 실패 하나하나가 드다 말하는 대로 미래로 연결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넘어지지 않고는 걸음마를 배울 수 없듯 수많은 실패를 겪으면서 우리의 인생은 여물어간다. 실패는 그저 삶의 또 다른 모습이고 도전이며 자극이다. 우리는 흔히 성공적인 결과만 살펴보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무수한 출혈이 함께하기 마련이다.(75-76)


그 사건은 놀다가 일어난 단순한 일에 불과했고 잘잘못을 따지자면 그걸 그곳에 놓아둔 내 실수가 더 컸다. 말할 수 없이 아쉬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 데다 아이까지 혼내는 것은 두 번 실수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나는 아이를 다독였다.

"소은아, 괜찮아. 도자기는 다시 구하면 돼."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느니 차라리 도자기가 깨지는 편이 더 낫다고 나 자신을 위로했다. 내 감정을 흩트리는 어떤 일을 마주했을 때 나는 무의식중에 마치 주술처럼 이 말을 중얼거린다. 

'잊어버려.'

실수는 누구나 한다. 나는 감정을 주체하기가 힘들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우선순위를 생각하려고 했다. 아무리 도자기가 귀하다 해도 내 아이만 할까.

 

무언가 실수를 한 순간 아이는 이미 자신이 잘못했음을 알고 있다. 거기에 대고 잔소리를 퍼부어가며 상처를 긇어댈 필요는 없다.(67)


우리 가족이 어떤 상황이나 문제를 해결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잊어버려'이다. 작은딸이 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풀이 죽은 모습으로 돌아왔을 때, 열심히 준비하고도 기대하던 성적을 받지 못했을 때, 큰 딸이 손끝이 터지도록 연습하고도 입상하지 못했을 때, 대학 기숙사에서 외톨이가 되었을 때, 지하 자취방에서 바퀴벌레 꿈을 꾸고 일어나 정말 바퀴벌레를 발견했다고 전화왔을 때, 나는 딸들에게 수없이 "잊어버려"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 나는 지나간 일을 후회하며 회한과 아쉬움에 젖어 대책 없이 고민하기도 했다. 드물게 세상을 향한 분노가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던 때도 있었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부모를 일찍 여의고 혼자 힘으로 살아내며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부딪혀 진한 슬픔도 맛보고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세상살이가 더 힘들어진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때 결심한 것이 '지난 것은 잊자'였다.

 

우리 가족에게는 우리말의 '잊어버려'보다 'Forget about it'이라고 영어로 말하는 게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딱히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잊어버려'에는 과거의 실수뿐 아니라 지난 성취조차도 잊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와 함께 다른 무언가가 더 담겨 있다. 그 무언가를 굳이 표현하지면 '용서하라'는 의미에 가깝다.(68)


"네 스스로 너를 괴롭히는 생각에서 탈출하는 게 어떨까?"

삶의 모든 단계에서 행위의 주체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아이가 항상 주체적, 능동적으로 행동하길 바란다면 그것을 습관화하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는 물론 나 자신에게도 이 말을 자주 사용한다. 내게 '잊어버려'는 내가 한 실수와 판단착오에 따른 고뇌에 빠지지 않고 나를 용서하는 동시에 후회의 늪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진정제와 같다.(69-70)


'잊어버려'는 어느새 우리 가족의 공통어가 되었다. 이야기 도중에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도 '잊어버려'를 외치며 깔깔대는 딸들은 이 말을 나타내는 대명사로 여긴다.(70)


토머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할 때 그는 무려 이천 번이나 실패를 했다. 다이 한 기자가 에디슨에게 실패했을 때의 기분이 어땠는지 묻자 에디슨이 가볍게 대답했다.

"실패라니요?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전구가 빛을 내지 않는 이천 가지 원리를 알아낸 것뿐입니다."

인간의 진보과정은 누구나 실수나 실패의 과정이 맞물려 있다. 진보는 실패의 다른 이름이고 실패는 곧 발전이다. 그러므로 부모느느 아이의 실수를 발전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아이에게 용기를 주는 일어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71)


 

 

 

 

 

 

 

 

 

내가 아빠로서, 늦깍이 학생으로서 경험한 바를 고백하건데 학문과 양육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며 아픈 노력의 과정이 필요한 일이다. 내 유학생활은 학위 취득보다 가족 간의 행복을 가꿔가는 힘의 원천을 찾은 데 더 큰 가치가 있었다.(154)


작은딸에게 아빠는 ...

[...] 그 편지의 말미에는 "소은아, 아빠는 네가 처음부터 잘할 거라 기대한 적이 없다. 처음엔 황소걸음이지만 바탕이 확립되면 누구보다 잘할 거야"라고 쓰셨다. 딸에 대한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지지일 거라 생각하면서도 그 이야기는 마법처럼 내 마음에 자리 잡았고 어려운 시기를 잘 견디게 했다. 그 후에도 공부와 외로움, 로스쿨 생각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아빠는 "고생을 선택해서 하는 것은 행운이다. 그걸 기억하면 잘 견딜 수 있을 거야"라고 하셨다.(156)


부모가 바르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다. 아이들의 행동에는 부모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다.(161)


모든 것에서 뒤처졌기에 여름방학 삼 개월 동안 책을 충분히 읽지 않으면 한 학기가 몹시 힘들었다. 배운 것과 배울 것을 점검해 정리하고 읽어둘 책을 미리 읽어두어야 간신히 새 학기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다.(161)


하디스는 시끄러웠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곳에서 집중이 잘 되었고 유학 기간 내내 그곳을 아지트로 삼았다. 하디스에 가면 언제나 나를 볼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어느 날 학과장이 새벽 한 시에 하디스로 나를 찾아왔다.

그분은 내가 하디스 매장의 한구석에서 공부하는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온화하고 정겨운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긴 팔로 의자를 끌어다 앞에 앉았다. 그와 함께 커피와 간식을 나눠먹으며 미국의 정치와 유학생활의 애로사항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곳에는 나처럼 책을 보거나 일을 하는 단골손님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노부부도, 젊은 변호사도 있었다. 우리는 가끔 눈인사도 하고 짧은 대화도 하며 가깝게 지냈다. 저녁마다 들르는 노부부는 구석에 앉아 있는 나에게 와서 매일 무슨 공부를 하는지, 자녀는 있는지 등 소소한 것을 물었다. 노부부는 "미국 학생들이 당신처럼 열심히 해야 하는데" 하더니 올 때마다 내게 커피 한 잔을 보냈다.

그러던 그들이 한동안 보이지 않아 무슨 일이 생겼나 궁금했는데, 열흘 뒤에 나타는 그들은 내게 티셔츠를 하나 선물했다. 플로리다로 여행을 다녀오면서 나를 위해 기념 티셔츠를 사왔다는 게 아닌가. 그 깊은 마음 씀씀이가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았다.

그때의 습관 때문인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집 앞의 커피숍으로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고 있다. 작은 딸도 로스쿨 시절 파네라라는 샌드위치가게에서 살다시피 했다. 부전여전인가?(162)


사실 가족과의 운동은 내게 그 모든 것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마음과 정신이 지치면 몸도 같이 지쳐버리므로 균형을 잃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중요했다.(162)


삶에서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을 때는 건강을 자신하거나 상식이 부족해 자신도 모르게 건강을 해치는 습관을 들이기 십상이다.(164)


 

 

 

 

 

 

 

 

가난한 유학시기라도 즐거움과 기쁨은 곳곳에 존재한다. 단지 우리가 즐거운 순간조차 고통을 떨쳐내지 못하고 되새김질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자주 되돌릴 수 없는 과거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끌어다 미리 고민한다. 과거와 미래의 문을 닫아놓고 오로지 현재에만 집중하며 살아내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더구나 우리의 일상에는 작은 기쁨, 소소한 아름다움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당시 나는 학위를 취득하면 다시 직장을 잡게 될 거라는 낭만적인 생각은 아주 조금밖에 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딸들 양육에 필요한 교육비와 생활비 등 잡다한 걱정거리가 나를 점령했다. 그때마다 나는 실학자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을 쓴 이수광 선생의 들을 떠올렸다.

"오직 현재를 보고 정신을 집중하여 굳게 지키라"

한데 의식은 흐르는 물처럼 지금 다잡아도 쉽게 흘러가 버린다. 그걸 놓치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붙잡기 위해 애써야 한다. 실제로 나는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종종 과거의 죄으식이나 후회를 떠올렸고 미래를 걱정했다. 행한 것보다 행하지 못한 것, 말한 것보다 말하지 않았어야 하는 것이 '현재'를 사는 나를 짓눌렀다. 

이 당혹스런 느낌에서 벗어나고자 나는 다시 현재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일단 학위를 받는 것에 집중하고 미래의 일은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자, 오늘을 유익하게 잘 보내자,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불확실하니 오늘에 충실하자, 이렇게 다짐했다. 나를 붙잡아준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를 지탱하게 해준 최선의 사고는 이것이었다.

'Here and Now' (166-167)


 

 

 

 

 

 

아이들은 어른의 '기다림'을 먹고 자라는 열매다. 빨리 결실을 맺게 하고자 조급하게 다그치면 부작용이 따른다. 과일이 익을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듯 아이들의 성장에도 가 있는 법이다.(171)


교육은 단순히 학교에서 교사가 가르치고 학생은 받아들이는 이중 구조가 아니라 가정, 사회, 사람, 자연 등 모든 것 안에서 이뤄진다.(171)


엄마가 된 아내도 엄마가 되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가치나 방식을 아이들에게 맞춰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딸을 키우며 낯선 상황에 적응하고 스스로를 바꿔가는 일은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아내는 딸의 성격과 특성이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며 딸이 본성대로 자라도옫 돕는 일이 부모의 몫임을 새삼 확인했다. 사춘기 딸은 고정된 모습이 아니라 늘 변화하는 고유한 인격체였다. 우리 부부는 '어린 딸의 부모'에서 벗어나 딸의 성장 속도에 맞춰 변화해야하는 시점이라는 데 동의했다.

누군가의 부모가 되는 순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부모로 산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책임이다. 결국 내 삶 전체가 딸들의 부모로 살아가는 삶이었다. 아이들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많은 문제와 갈등을 풀어가는 것이 내가 나를 채우고 진정한 어른이 되는 길이었다. 내 삶의 껍질에서 잠잠 삶의 알맹이이자 핵으로 들어가는 길 말이다.(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