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일 오후 베를린
부모님 생각
아침 요가와 명상을 하고 일기를 쓰고 있었다. 다 쓰고 나니 11시 30분. '샤워하고 준비하면 시간이 빠듯할텐데. 12시 미사에 가지 말까?'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매주 미사에 가는 사람은 아니다. 고민이 있거나 바라는 일이 있을 때는 매주 간다. 평소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간다.
하지만 논문을 끝내고, 시간이 된다면 매주 다니기로 했다. 논문을 잘 끝냈으니 감사 인사도 드리며 일상의 작은 고민이나 감사한 일을 풀어놓기 위해서. 나에게 성당은 꼭 기도만 하는 곳은 아니다.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생각하며 초심으로 돌아가는 곳이다. 왜 독일에 왔는지. 인생의 방향은 어디인지. 평소에는 나의 생활에 집중하며 지내지만, 성당에 오면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기도할 여유도 생긴다. (미사책 앞에 기도해줄 사람들을 적어 놓았다.)
성당에서는 가족을 생각하게 된다. 엄마아빠와 괴팅엔 부모님. 한국에 살았을 때 일요일마다 가족과 성당에 갔다. 독일에 와서는 괴팅엔 부모님과 함께 미사를 드렸다. 내가 일요일마다 악기박물관에서 일을 해야하니 매주 일요일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때는 괴팅엔 부모님과 성당에 갔다. 폴렛 엄마는 내게, 괴팅엔 가족의 다른 학생들보다 우리 사이가 더 각별할 수 있는 이유는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언제 어디서나 갈 수 있는 곳
지난 주말 아빠와 통화하며 한국의 코로나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빠는 일요일 미사가 2주 동안 쉬게 되었다고 하셨다. 놀랐다. 상황이 정말 심각하구나 싶었다.
오늘 미사를 드리며 '어쩌면 독일에서도 미사가 열리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미사 가는 게 귀찮을 때가 있다. '가지 말까?' 마음이 꾸물꾸물 올라온다. 그래도 가야지! 마음 먹고 갈 때도 있지만, 가기 싫은 마음이 이길 때도 있다.
미사의 소중함을 종종 잊는다. 언제 어디서나 갈 수 있는 곳이라서. 미사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똑같이 진행된다. 미국 동부로 음악 캠프를 갔을 때 가까운 거리에 성당이 있었다. 캠퍼스 안에 있는 성당에서 아침 미사를 드리고 연습실로 향했다. 영어 미사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전례 순서가 똑같아 한국어로 생각하며 따라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드리는 미사였지만, 성당 안에서는 이곳이 외국이 아니라 항상 있었던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테말라에 인턴을 하러 갔을 때도 홈스테이 할머니와 함께 성당에 갔다. 과테말라 전통의상을 입은 성모님과 예수님 그림이 제대 옆에 있었다. 스페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미사 전례 순서가 같아서 평소처럼 미사를 드릴 수 있었다. 독일에 처음 왔을 때도 열심히 성당에 갔다. 독일어 시험 꼭 통과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독일의 코로나 상황이 한국처럼 된다면 주일 미사도 열리지 않을 것이다. 미사의 소중함을 항상 기억해야겠다.
이어지는 글
주 독일 교황청 대사관 - 베를린에 있는 바티칸 교황청 대사관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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