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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Alltag/하루하루가 모여 heute

채식의 기쁨 - 토마토 리조또 (글쓰기와 채식)

by 통로- 2020. 3. 1.

2020년 2월 29일 토요일 오후 베를린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고기를 조금만 먹고 싶은 사람이다.

 

8년 전 채식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앵무새 두 마리를 키울 때였다. 앵무새가 목욕을 하고 홀딱 젖어있는 모습을 보니, 내가 마트에서 보는 생닭이랑 똑같이 생겼더라. 치킨을 덜 먹기로 했다. 다른 고기들도 먹지 않으려 노력했다. 의식적으로 고기를 먹지 않기로 다짐한 터라, 가끔 고기가 먹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삼겹살 생각이 났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삼겹살 집으로 회식에 갔던 날, 마음이 무겁기는 했지만 고기가 참 맛있었다. 먹고 나서 마음이 불편했다. 조금씩 고기를 줄이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고기를 전혀 먹지 않게 되었다. 일 년이 넘도록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스팸을 한 입 베어 물었고 다시 고기를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실패하기는 했지만 그 일 년은 가치 있었다. 일 년 넘는 시간 동안 고기를 먹지 않아서인지 고기 욕구가 사라졌다. 고기 없이도 잘 산다. 가족 여행이나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을 때는 고기를 먹는다. 친구들과 함께 요리할 때 고기밖에 없다면 고기를 먹는다. 하지만 혼자 요리하기 위해 고기를 사는 건 드물다. 

 

 


 

글쓰기와 채식

 

 

2년 전 글 쓰는 삶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필기 시험은 다 끝냈고 여러 소논문과 논문이 남아있었다. 시험공부하는 삶과 글 쓰는 삶은 달랐다. 시험공부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글은 그렇게 무리해서 쓰면 다음 날 넉다운이 되어버렸다. 글 쓸 때는 무리하지 않고 매일 꾸준히 쓰는 것이 중요하다. '글쓰기 시간 관리' 책에서 보면, 글쓰기 여신(뮤즈)이 오지 않더라고 꾸준히 글을 쓰라고 한다. 글쓰기 여신이란 글이 잘 써지는 순간을 말한다. 음악가에게 악상이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면, 글 쓰는 이에게는 글이 잘 써지는 마법 같은 순간이 있다. '글쓰기 시간 관리' 책의 저자는, 글쓰기 여신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글쓰기 여신은 보통 소논문 제출 기한 하루 전에 온다), 글쓰기 여신이 우리에게 오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매일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글쓰기 여신이 오게 되어있다고. 

 

매일 도서관에서 소논문을 썼다. 오전에는 글이 잘 써졌지만 오후에는 잠이 와서 집중이 안 되더라. 학생 식당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은 오후에 그랬다. 많이 먹은 것도 아니고 적당량을 맛있게 먹었을 뿐이데. 점심을 적게 먹게 되었다. 점심을 거의 안 먹고 소논문을 쓰다 보니, 저녁에 집에 오면 허기가 졌다. 

 

작년 10월 글쓰기 센터에서 만난 친구들과 글쓰기 그룹을 만들었다. 도서관에 와서 함께 논문을 썼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한나는 채식주의자다. 점심때마다 한나를 따라 채식 학생 시당에 갔다. 채식을 하니 오후에 피곤하지 않더라. 게다가 학생 식당의 채식 요리는 정말 맛있었다. 

 

"채식이 이렇게 맛있다면 난 매일 채식만 먹으며 살 수 있을 것 같아!" 

 

감탄하며 한나에게 말할 정도였다. 학생 식당 요리와는 달리 집에서 만든 나의 채식 요리는 뭔가 부족했다. 채식 레시피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채식주의자 친구인 비앙카와 함께 요리하며 채식 레시피를 배우기도 했다. 

 

 


 

토마토 리조또

 

서론이 길었다. 채식의 기쁨을 쓰려고 글을 시작했다. 직접 만든 채식 요리가 참 맛있었기 때문이다. 야채만으로도 풍미 있고 깊은 맛이 나만의 레시피를 발견했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충분히 넣고 집에 있는 모든 야채를 잘게 썰어 볶는다. 넣는 순서는 단단한 야채부터. 냉동 야채가 있으면 가장 먼저 넣는다. 양배추를 얇게 썰어 볶으면 토마토소스에서 깊은 단맛이 느껴진다. 볶다가 끓는 물을 넣고 토마토소스를 넣는다. 그다음 밥을 넣고 약불에서 익혀주면 끝! 

 

나에게만 맛있었던 게 아니라 룸메이트들도 감동하며 먹은 음식이라! 자랑스럽게(...) 블로그에 자랑(!)해본다.

 

 

 

 

 

 

독일에서 살 수 있는 토마토소스: 알나투라 구운 야채 소스. 이거 진짜 맛있다! 그동안 왜 모르고 살았을까! 보통 토마토소스 만들 때 가루 소스 하나만 넣었다. 비앙카는 여러 소스를 넣더라. 나도 사봤다. 풍미가 더해져 맛있음! 오른쪽은 Knorr의 볼로네제 소스 가루다.

 

 

 

 

 

목욕을 즐겨했던 잉꼬 폰디

 

 

 

 

 

 


 

1년 후 2020.02.28일

버스 사고, 사랑니, 충치, 코로나

 

2년 전 버스 사고가 났다. 사실 사고  전부터 몸의 변화가 있었다. 논문과 이사 때문에 몸에 무리가 왔던 모양이었다. 겨울에 호된 감기 몸살을 두 번이나 앓았다. 두 번째 감기 몸살 때는 코감기 약을 먹지 않아서인지 귀가 아파 이비인후과에 다녀왔다. 어금니가 아파 치과에 가니 위쪽 사랑니가 뿌리까지 썩어있었다. 누워있는 아래쪽 사랑니 때문에 어금니도 많이 썩어있었다. 사랑니 네 개를 모두 뽑고 충치치료도 받았다. 버스 사고로 정형외과와 물리치료도 받으러 다녀야 했다. 

 

여러 변화를 겪으며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지런히 마트에 가서 신선한 재료를 사 왔다. 배달 음식이나 사 먹는 음식을 줄이고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서서히 식단이 변했다. 아침에 과일을 먹으니 다음날 아침 일을 잘 보게 되었다. 곡물과 야채를 기본으로 음식을 만드니 소화가 잘 되어 점심 식사 후에도 공부도 잘 되었다. 소화 시간이 고기보다 짧게 걸리는 채소로 저녁을 만드니 잠도 잘 잤다. 매번 이렇게 채식 식단만 먹었던 것은 아니다. 가끔 라면, 돈가스, 동그랑땡, 소시지, 만두가 그리울 때는 먹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기가 먹고 싶은 마음이 가끔 들었다.

 

1년 전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요리할 시간이 생겼다. 간단하고 쉬운 요리를 한 후 사진을 찍어 인스타에 올렸다. 몇 개월이 지나자 '뭘 먹지?' 생각이 들 때는 내 인스타를 보며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고기를 먹지 않는 게 목표는 아니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려 한다. 몸의 소리를 듣는다. 따뜻한 국이 먹고 싶은지, 조금은 특별한 음식(주로 맛있는 냉동식품)이 먹고 싶은지. 10년 전 채식을 시도한 덕분에 현재 식단이 바뀌었다. 지금 내가 만드는 음식 덕분에 10년 후 식단은 더욱 건강하게 바뀌어 있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