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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Alltag/하루하루가 모여 heute

2020년 목표! 대충 살기

by 통로- 2020. 1. 15.

2020년 1월 14일 베를린 이른 저녁 TU Berlin 도서관 4층

 

 

정말 오랜만에 글을 쓴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작고 큰일이 많았다. 블로그에는 적지 못했지만 에버노트(메모 앱)에 차곡차곡 정리를 해두었다. 블로그에도 조금씩 풀어놓아야지! 

 

'무슨 글을 쓰나?' 생각하다 몇 초 만에 떠오른 주제! 2020년 목표!

 

나는 '이번 해 목표' 이런 것을 잘 하지 않았다. 그러다 몇 년 전 괴팅엔 도리 언니의 '너는 이번 해 어떤 목표를 세웠어?' 질문 이후로 나도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2020년 목표는 

대충 살기

 

대충 살기가 2020년 목표다 ㅋㅋㅋㅋ 2019년에 논문을 쓰며 나도 모르게 완벽주의자가 되어버렸다. 꼼꼼함은 논문 쓰는 학생의 덕목이지만, 너무 꼼꼼해져 진도가 안 나가더라. 내가 완벽주의자가 되어버린 줄 상상도 못 했다. 어느날 너무 꼼꼼해진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함께 공부했던 하이케Heike를 보고 깨달았다. 하이케는 베를린 공대에서 건축학 석사 논문을 쓰는 친구다. 그 친구가 시간 관리하는 법, 공부 계획 세우는 법 등을 보니 나와 비슷한 게 많더라. 하루는 내가 펜을 안 가져와서 하이케에게 빌려달라고 하니, 펜 한 자루에 핑크 형광펜까지 주더라. 꼼꼼하게 공부하는 하이케에겐 펜 하나로는 부족한 것 같았다. 항상 펜과 색연필로 공부하는 나처럼, 하이케는 펜과 형광펜으로 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게도 두 자루를 빌려준 것이었다. 이런 꼼꼼함!!

 

하이케와 점심을 먹다가 완벽주의자 이야기가 나왔다. 하이케는 스스로 완벽주의자인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완벽주의자인 줄 몰랐는데 하이케는 스스로 알고 있더라. 하이케는 내가 그동안 만났던 완벽주의자와 달랐다. 웃기고 유쾌하고 빈틈이 많아 보였다. 하지만 논문에 있어서만은 완벽주의자였다. 나도 많이 어리바리하다. 독일에서 모국어가 아닌 독일어로 생활하다 보니, 아는 것도 또 물어야 하는 일(징검다리를 100번 두드려야 함. 독일은 워낙 케바케의 나라이니까. 게다가 나는 이 나라 시스템을 잘 모르는 외국인 학생이다)이 많다. 그렇게 나의 생존 기술이 나를 완벽주의자로 만들어버렸다. 대충 써서 내고 싶었던 논문이었다. 독일어 글쓰기 실력이 부족해 매주 글쓰기 센터에 갔다. 글쓰기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좋은 글을 쓰고 싶었나 보다. 머리에는 '배운 대로 써야 하는 글'이 있었다. 하지만 내 논문은 거기에 한참 못 미쳤다. 자꾸 고치다보니 진도가 안 나가더라. 그렇게 나도 모르게 완벽주의자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완벽주의자가 한 번 되어보았다는 건 아주 큰 자산이다. 나는 원래 대충 사는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때 침대에 누워

"나 이렇게 대충 살아도 되나?"

자문했을까! 어린 꼬마가 대충 사는 자신을 걱정했던 것이다.

 

학교 숙제도 학원 숙제도 대충대충 해서 어떻게든 때우고 다시 집에 와서 또 숙제 미루다 대충하고. 이랬던 내가 '대충 살기'라는 목표를 세웠다니 얼마나 큰 발전인가? 

 

대충 살기라는 큰 목표 외에 작은 목표도 하나 추가했다. 가계부 쓰기! 작년에는 가계부를 핸드폰 앱으로 썼다. 앱으로 쓰니 재미도 없고, 돈을 이렇게 계획 없이 썼나 후회가 되어 안 쓰게 되더라. 이번 해에는 예쁜 다이어리에 손글씨로 적고 있다. 매일 저녁 손글씨로 가계부를 쓰니 일기 쓰는 기분이다. 자원봉사자 교육에서 만난 친구가 알려준 방법이다. 그 친구는 돈 관리를 정말 잘한다. 내가 가계부 쓰기에 자꾸 실패한다고 이야기하자, 친구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며 자신의 가계부를 사진으로 보내주었다. 

 

2020년 목표를 잘 이룰 수 있길!

 

 

ps. 친구가 말하길, 대충 살기와 가계부 쓰기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 했다. 나도 알고 있다. 대충 살면서, 일기 쓰듯 즐겁게 가계부를 써보겠다.

 

 

 

 

 

 

이어지는 글 - 작년과 재작년 목표 

2019년 목표 - 중요하지 않은 것은 대충하기

2018년, 단순하게 살며 담담하게 내 길 가기 -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사사키 후미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