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3일 화요일 이른 오후 베를린
풀꽃의 노래
이해인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굳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좋아
바람이 나를 데려다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새롭게 태어날 수 있어
하고 싶은 모든 말들
아껴둘 때마다
씨앗으로 영그는 소리를 듣지
너무 작게 숨어있다고
불완전한 것은 아니야
내게도 고운 이름이 있음을
사람들은 모르지만
서운하지 않아
기다리는 법을
노래하는 법을
오래전부터
바람에게 배웠기에
기쁘게 살 뿐이야
푸름에 물든 삶이기에
잊혀지는 것은
두렵지 않아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시도 음악도 아름답다. 수녀님의 말씀도.
나는 자의든 타의든 떠나는 삶을 살았다. 삼남매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에 부모님 곁을 떠났고, 가족 중에서 가장 먼저 타국 생활을 시작했다. 나의 성장을 위해 떠났지만 부모님 품이 그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떠났기에 가족의 소중함을 알았고, 태어난 나라에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독일에 사실 건가요? 한국으로 돌아갈 건가요?" 물으면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독일의 삶도 한국 생활도 모두 좋기 때문이다. 어디에 사는지가 중요해지지 않은 것은 과테말라에 다녀오고 나서다. 과테말라 시골 마을에 지내면서, 엄마 아빠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대한민국 6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느낌이 들었다. 베드버그와 치질로 고생은 했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즐거웠다. 왜 행복한 나라인지 알 수 있었다.
나에게는 어디에서 사는지보다 누구와 함께 사는지가 더 중요하다.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든 것은 내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어디에서 사는지보다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는지가 먼저다. 나는 이해인 수녀님 시 속의 풀꽃처럼 어디에서나 새롭게 태어나 살고 싶다.
... 그리고 오늘도 풀꽃처럼 집을 떠나 도서관으로 간다. 바람 대신 지하철을 타고 간다. 도서관 가기 싫은 마음이 일어나지만 '나는 풀꽃이다' 생각하며 집을 나선다.
매일 소논문 쓰는 삶이 지루할 때도 있지만
내가 살고 싶었던 단순하고 소박한 삶이니 기뻐하자.
몸이 건강하니 도서관 가기 싫은 마음도 생기는 게 아니겠는가!
아프면 도서관에 '안' 가는 게 아니라 '못'간다.
마음을 어르고 달래 도서관으로 향한다.
4개월 전 '풀꽃의 노래 포스팅'을 했더라! 까맣게 잊고 있었음 ;-) domi7.tistory.com/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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