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향과 매일의 실천

2020. 10. 5. 11:50일상 Alltag/하루하루가 모여 heute

 

2020년 10월 5일 새벽 3시 30분 베를린 P

 

 

 

작년 이맘때였을 것이다. 매일 아침 요가와 명상을 하면서 나의 삶이, 매일의 모습이 가톨릭과 불교의 중간 즈음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방향은 가톨릭 신앙에서 영향을 받았고 매일을 살아가는 모습은 스님의 하루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아직 가톨릭과 불교를 깊이 모른다.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 가톨릭에 익숙하기는 하지만 모르는 것이 많고, 불교는 스님들의 책으로 접해서 불교철학까지는 모른다. 배워가는 중이다.

 

 

 

가톨릭에서 영향을 받은 삶의 방향


가톨릭 신앙에서 영향을 받은 삶의 방향은 '나만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삶'이다.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첫 번째로는 내가 행복한 삶이지만 두 번째로는 내 삶이 나의 행복에서 끝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하는 공부가 누군가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면 좋겠다. 내가 하는 일이 사회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 내가 가는 길이 누군가에게 응원이 되면 좋겠다.

 

 

 

 

 

 

 

 

불교에서 영향을 받은 매일의 모습

 

(나는 불교를 잘 모른다. 배우는 중이다. 내가 아는 불교란 스님들의 책에서 읽은 그들의 실제적인 삶이다.)

 

필요한 것만 소유하는 삶. 내가 실천하고 싶은 삶의 모습이다. 법정 스님 책을 읽을 때마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내려두기로 다짐한다. 그것은 물건일 수도 있고 생각과 근심일 수도 있다. 법정스님 <일기일회>를 읽으며 오늘 맞이하는 아침이 내 생애 단 한 번이라는 것을 자각한다. 오늘 아침은 어제 아침과 다르고 내일의 그것과도 다르다.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고 깨닫는다. 법정스님 <홀로 사는 즐거움>을 읽으며 저마다 자기 다운 꽃을 피우는 풀과 나무를 떠올린다. 그 누구도 닮지 않으려고 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며 사는 풀과 나무와 같은 삶을 살기로 다짐한다. 그 특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사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글을 읽으며 나도 긍정적으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독일에 와서 혜민스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책을 보며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용기 있게 선택했다. 그에 따르는 책임은 내가 진다는 마음가짐도 배웠다. 명상을 배웠다. 매일 아침 명상을 하며 하루를 기쁘게 시작한다. 이별의 예의도 배웠다. 인연은 대부분 우연히 시작되지만 어떻게 이별하는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별하는 남자 친구에게 그동안의 고마움을 전했다. 우리가 헤어지는 이유는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나의 부족한 점은 내가 제일 잘 알았고 그의 부족한 점은 그가 제일 잘 알았다. 굳이 마지막에 그의 부족한 점을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 대신 그에게 고마웠던 점을 말했다. 룸메이트와 헤어질 때도 친구와 헤어질 때도 예의를 갖추었다. 

 

나의 마음이 세상을 보는 거울이라는 것도 배웠다.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는 일상이 수행자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 듣고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도 있지만 외국어로 공부하는 나에게는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홀로 공부하는 시간은 수행자가 자신을 갈고닦는 시간과 비슷하다. 

 

 

 

 

 

 

 

 

가톨릭과 불교

 

가톨릭과 불교의 비슷한 점도 발견했다.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은 언제 어디서나 나(내 마음)와 함께 계신다고 유치부 교리에서 배웠다. 가장 먼저 배운 가톨릭 교리이다. 불교에서는 나는 이미 부처인데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또 이미 깨달은 자신을 갈고닦기 위해 수행을 한다고도 한다. 두 종교에서는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이미 내 안에 있거나 나 스스로라고 말한다. 

 

두 종교가 추구하는 삶의 모습도 닮았다. 가톨릭 수도자(이해인 수녀님, 떼제 신한열 수사님)의 단순하고 소박한 삶은 스님의 삶과 닮았다.

 

한국에서 두 종교는 교류가 많았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법정 스님이 주지 스님으로 계시던 길상사 개원 법회에 방문하셨다. 법정 스님은 명동 성당에서 특별 강론을 하시기도 했다. 이해인 수녀님과 혜민스님은 서로를 이모 수녀님과 조카 스님으로 부른다. 

 

어떤 종교든 추구하는 것은 같지 않을까?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닌 함께하는 삶. 나는 단지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서 가톨릭에 익숙한 건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스님 책을 읽어 불교에 관심이 생겼을 수도 있다. 내가 무슬림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면 이슬람 종교를 가졌을 것이고 개신교 집안에서 자랐다면 교회에 다녔을 것이다. 유대교 부모님을 만났다면 나는 유대교인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성인이 된 지금까지 같은 종교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신앙 방황기를 거치기도 했다. 그래도 나에게 신앙이 있는 게 좋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또한 가톨릭 신자로서 가톨릭 교회의 잘못된 점은 비판하고 교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어떤 종교를 가졌나 보다 혹은 종교가 있느냐 없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삶을 사는가이다. 어떤 태도로 어떤 삶을 사는지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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