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31일 금요일 저녁 베를린
단순 소박한 삶의 풍성함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가난' 대신 '단순 소박함'이라는 말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세계 곳곳에서 생존권을 위협받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는 비교적 넉넉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좋은 건물이나 시설을 짓지 않고 단순 소박한 삶을 살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은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와 나눔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우리 역시 때로는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하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우리 공동체를 위한 기부나 헌금을 일체 받지 않기로 한 원칙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만일 우리가 기부나 헌금을 받았다면 부자가 되었거나 땀 흘려 노동할 필요가 없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어쩌면 더 소중한 자유를 잃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남에게 재정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은 개인이나 공동체 모두에게 큰 은총이다. 물론 이 원칙은 우리의 선택일 뿐 다른 공동체에 적용할 수 는 없다.
사실 우리 시대에 가질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것이 모두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또 좋은 것이라 해도 반드시 다 가지고 누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모든 뉴스를 다 알아야 하고 모든 책을 다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에서 사는 우리 형제들은 일 때문에 꼭 필요한 몇 사람을 제외하면 대부분 휴대전화가 없다. 2016년부터 원하는 사람은 가질 수 있도록 했지만 신청한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물론 스마트폰이 아니고 통화와 문자만 할 수 있는 구형 전화기다. 나 역시 다른 나라를 다닐 때는 휴대전화를 쓰지만 떼제로 돌아오면 전혀 쓰지 않는다. 떼제에도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지만 밤 시간에는 끊어진다. 비교적 외부와 연락을 많이 하는 편이인 나에게 인터넷이 되지 않는 여덟 시간은 휴대전화가 없는 것과 함께 휴식과 자유의 시간이다.
형제들 개개인과 공동체의 단순 소박한 삶은 초라하거나 엄격한 태도가 아니라 흔히 축제의 정신과 어우러진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우리 식탁에는 늘 식탁보가 덮여있고 꽃이 꽂혀있다. 아주 적은 것만으로도 손님을 맞이하는 데 익숙한 우리에게 나눔은 항상 풍성하다.
시골에 살면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아침마다 지저귀는 새들의 합창, 산기슭과 들판에 숨어 피는 야생화, 숲속 산책길에서 만나는 여유나 노루, 아침 안개와 저녁노을, 별이 총총한 밤라늘의 은하수, 풀벌레와 부엉이, 나이팅게일 소리···. (신한열, 함께 사는 기적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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