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날 새벽 요가 - 고마운 사람들

2019. 3. 19. 16:48일상 Alltag/하루하루가 모여 heute

2019년 생일 화요일 베를린

눈을 떴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 몸을 일으켜 화장실 가는 길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다. 

와! 오늘 새벽 요가할 수 있겠네! 

어제 쓴 글: 요즘 밤 12시에 잠드는데 조금씩 일찍 자서 새벽에 요가를 하고 싶다. 동트기 전에. 10시에 자면 6시에 일어날 수 있겠지? 그럼 고요한 스페인 순례길 분위기로 요가를 할 수 있겠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조금씩 일찍 잠드는 습관 갖자.

천천히 하기로 마음 먹으니 바로 다음날 원하던 일이 일어났다. 이 모든 것이 방광 덕분이다. 새벽에 일어나고 싶은 내 마음을 어떻게 알고 깨워주었을까? (생각해보니 어제 먹은 야식 때문인 듯 ㅎㅎ 치킨 먹으며 물을 많이 마셨다.)  


화장실에 다녀와 침대 옆에 있는 의자를 옷장 앞으로 옮기고 미니 청소기를 한 번 돌렸다. 요가 매트를 펼치고(ausrollen) 앉았다. 푸른빛이 들어오는 새벽녘이다. 그저께부터 하고 있는 명상 요가 영상을 틀었다. 12분 동안 요가 동작을 하고 5분 동안 명상을 한다. 요가를 하는데 땀이 많이 났다. 그만큼 잘 따라 했다는 거겠지? 내심 뿌듯했다.   

명상이 시작되었다. 수건을 정사각형으로 접어 요가 매트에 올렸다. 눈을 감고 편한 자세를 취했다. 생일이라 그런지 인생에 고마운 사람이 떠올랐다.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방명록에서 A님과 L님의 생일 축하 방명록을 읽었다. 망망대해(인터넷 바다) 작은 섬 나의 블로그의 소중한 이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검색해서 오신 A님과는 신앙 이야기를 한다. 원래 신앙은 굉장히 개인적인 부분이라 블로그에 쓰지 않았다. A님 덕분에 조금씩 성당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게 되었다. 조용한 나의 블로그에 잔잔한 댓글을 달아주시는 고마운 분이다.  

L님은 유입 검색어 '엄마 생각' 덕분에 알게 된 이웃이다. 누군가 다음(www.daum.net)에서 '엄마 생각'을 검색해 내 블로그에 왔다. 그 검색 페이지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블로그. 내가 먼저 댓글을 달았고 그 이후로 인연이 이어져 글 친구가 되었다. 

람이는 괴팅엔 검색을 하다 내 블로그에 왔고 괴팅엔에서 이웃 기숙사에 살게 되어 친해졌다. 요 며칠간 람이 손편지를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우편함을 열어보고 있다.  마음이 힘들 때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던 친구. 나이가 비슷해 공감하는 것이 많다. 요즘 우리는 건강을 챙기고 있다. 

그리고 나를 태어나게 해 준 가족.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내가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을까? 나라는 자아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을까? 엄마, 아빠를 만나게 해 주신 외삼촌 할아버지 신부님과 미카엘 신부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다. 

아빠: 앗! 아빠께 편지를 써야 하는데 아직도 못썼다.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늦지 않았다. 아빠께 편지를 써야지.  

엄마: 이웃 블로그 권주리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를 낳는 것은 인간이 감당할 고통이 아니라고 한다. 엄마는 나를 위해 그 고통을 감당하셨다. 9달을 무거운 몸으로 다니다 나를 낳고 키우느라 정말 고생이 많으셨겠지? 엄마가 언젠가 해주신 말이 떠오른다."아이를 낳고 키우면 힘든 점도 많지만 기쁜 날이 더 많단다." 엄마의 말씀을 듣고 어린 나는 어른이 되면 꼭 아이를 낳아야겠다 마음먹었다. 초등학생 때 내 딸아이 이름도 정해두었다. 해미. 진짜 이 이름을 쓰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 

언니: 내가 동생이 태어나 신기했던 것처럼 언니도 내가 태어났을 때 기뻐했을 것이다. 작은 존재가 신기하고 귀여웠겠지? 어릴 적 언니는 나를 끔찍이 챙겨주었다. 그러다 언니는 머리가 조금 커진 동생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는 자신을 발견했고 '나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조금은 냉정한 사람 되었을 것이다. 

동생: 동생이 태어났을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동생이 태어난 날 아빠와 언니랑 산부인과에 가서 유리 너머로 새빨간 얼굴의 생명체를 만났다. 그때 동생 얼굴이 너무 빨개서 나중에 엄마와 함께 집에 온 동생이 다른 아기인 줄 알았다. 분명 빨간 아이였는데 집에 온 아이는 살구색 얼굴의 아이였다. 

형부: 언니의 남편으로, 조카들의 아빠로, 또 우리 가족 카톡방의 IT 전문가로 활약하는 형부. 처음 형부를 만났던 날엔 어색함이 감돌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엄마의 사진 관련 질문(글씨 크기 72 포인트로 했는데 사진에 입력한 텍스트가 안 보인다, 왜 C 드라이브에 저장이 안 되는지 등)에 매번 일등으로 대답해주는 형부를 보며 ‘처가 카톡방 살이’를 하는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고모님: 독일에서 만난 고모님은 25살에 만난 새로운 가족이다. 내가 독일에서 걸음마(어눌한 독일어로 독일 생활을 시작)를 할 때 내 손을 꼭 잡고 여기(뒤셀도르프 도서관 이용 방법) 저기(한인마트 위치) 데리고 다니신 감사한 분이다. 고모님께도 감사 문자를 보내야겠다. 




요가가 끝났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다. 어젯밤 야식을 먹어서 그런가 보다 ㅋㅋㅋㅋ 국화차를 만들었다. 어른이 마시는 국화차. 이거 정말 템플스테이 느낌 나는 걸!

김민식 피디님 책을 읽고 아침마다 글을 쓰고 싶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람이가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알려주었다. 책에서 아침에 글(모닝 페이지)을 쓰라고 추천한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에 넣어두니 어느 순간 아침마다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원래는 아침 요가 후기를 쓰려고 작성한 글이었지만 점점 어제 일기, 물리치료 이야기, 명상하며 떠오른 생각, 추억 등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요가도 마찬가지였다.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꽤 오래전부터 했었다. 어느 날 보니 매일 아침 요가를 하고 있더라. 

이렇게 마음에 담아 두었던 것을 이미 가지고 있거나 어느 순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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