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4일 화요일 오후
낮잠을 자고 눈을 떴다. 커튼 사이로 따뜻한 오후의 빛이 비친다. 책장에서 이해인 수녀님 책을 꺼냈다. 이해인 수녀님 글은 오후와 잘 어울린다. <그 사랑 놓치지 마라>의 시와 글을 소개한다.
식당 공동체
- 이해인
독서자가 큰 소리로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며
밥을 먹는데
식탁 위의 반찬도
숟가락 젓가락도
나보다 먼저 엎디어
기도를 바치고 있네
침묵 속에 감사하며
엄숙하게 먹는 밥도
수십 년이 되었건만
나는 왜 좀 더
거룩해지지 못할까
밥에게도 미안하네
멀리 바다가 보이고
창가에선
고운 새가 노래하고
나는 환히 웃으며
일상의 순례를 시작하네
- 수도원의 아침 식탁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 이해인 <그 사랑 놓치지 마라> 133쪽
나도 일상의 순례자처럼 살아야지. 오늘 하루도 순례길을 걷듯 살아야지. 아침에 읽은 법정 스님의 <일기일회>에서처럼 순간순간 깨어있어야지.
수녀님은 시 뒤에 짧은 글을 덧붙이셨다.
"침묵할 때도 많지만 장상이 종을 쳐 신호를 하면 서로의 대화가 이루어지는데 나는 이 시간을 좋아합니다. 별로 큰 뜻 없이 전하는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의 근황들, 가벼운 농담들, 자연에 대한 관찰과 시사적인 내용까지.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이들로서의 기쁨과 슬픔을 공유합니다.
지금 내가 속한 6번 식탁 열두 명 중에 나는 서열이 세 번째인 언니입니다. 종종 흐뭇한 미소로 후배 수녀들을 바라보며, 한 공동체에 함께 살아가는 특별한 인연을 고맙게 되새기며 스스로 감동하곤 합니다." (135쪽)
나도 부엌에서 룸메이트와 사소한 일상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요일이었던 그저께는 크리스티나와 후안과 아침을 먹으며 대화했다. 어젯밤에는 오늘 먹을 음식을 미리 준비하며 알렉스와 이야기했다. 우리 둘 다 머리도 안 감고 잠옷을 입은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이어지는 글
· 한국어가 모국어라 좋다 - 이해인 <풀꽃의 노래>를 듣고
· 나는 늘 떠나면서 살지 - 풀꽃의 노래, 이해인 (해인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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