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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카드 :: 한동일의 공부법

by 통로- 2020. 12. 6.

2020년 12월 5일 토요일

 

한동일의 공부법

 

 

계기: 친구 B가 한동일 작가의 <라틴어 수업>을 추천해준 이후로 한동일 작가의 책은 모두 읽고 있다. 2020년에 출간된 <한동일의 공부법>은 블로그 어떤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지 잘 모를 정도로 내 삶 전반에 좋은 영향을 주는 책이다. 일상에서도, 공부를 하면서도, 신앙적으로도. 작은 행복 카테고리에도 들어가는 책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응원해주는 책이랄까. 삶의 선배이자 공부 선배가 해주는 따뜻한 이야기다.

어느 날 독일어로 된 전공책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어 한숨이 나왔다. 더 이상 공부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이 책이 떠올랐다.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아 밑줄을 긋고 메모하며 읽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풀어졌다. '그래, 내가 이해 못하는 건 당연하지. 공부가 내게 어려운 건 당연하지. 이 지난한 과정이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는 나의 배움이 가치 있게 쓰이겠구나.' 다시 책을 펼치고 공부를 시작했다. 마음이 열리니 뇌도 말랑말랑해진 걸까? 이해가 안 되던 부분이 드디어 이해가 되었다. 

 

 

 


 

독서 카드: 한동일의 공부법

 

 

 

 

다시 학생이 됐지만, 다른 학생들과 출발선이 달랐기에 신입생처럼 마음을 다잡아야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공부가 어려웠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언어와 법학이라는 이중의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신학교에서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등을 조금씩 공부했다 해도 실제로는 가나다를 뗀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64)

 

 

 

로마에 대한 제 첫 느낌은 '사람을 압도하는 도시'였습니다. 그곳으로 가기 전에 10개월 동안 이탈리아어를 공부했던 페루자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해발 500미터에 가까운 고지대에 있는 소도시인 페루자는 평화롭고 느긋하며 아름다운 경관을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제겐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감사한 마음으로 건너간 첫 이국땅이기도 합니다. (65)

 

 

 

여기서 잠시 교회법이 왜 중요한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요. 우리나라 민사소송 절차는 로마법을 발전시킨 교회의 소송 절차법에서 유래했습니다. 재판관의 기피나 변호사 수임료 문제와 관련된 제도는 이미 12~13세기에 완성됐지요. 교회법은 단순히 특정 종교의 내부 규율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와 직접 관련이 있는 법률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67)

 

 

 

로마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저는 큰 어려움 없이 학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페루자에서 10개월 동안 이탈리아어를 공부한 덕분에 언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처음 3개월 동안 '외국인을 위한 대학'에서 기초 이탈리아어를 공부한 뒤 우연히 인연이 닿은 세 분의 선생님에게 배웠습니다. 문법, 회화 그리고 법학개론의 리딩을 도와준 세 분의 선생님과 주변의 여러 사람 덕분에 이탈리아어의 실력이 늘었어요.

그런데 이 자신감이 강의실에 들어서는 순간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법학 수업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겁니다. (68)

 

 

 

 

 

법학 공부를 시작하면 저 같은 비전공자는 가장 먼저 법률 용어의 벽에 부딪히게 되는데요. 우리말로 익히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모든 걸 다시 이탈리아어로 이해하는 것은 엄청난 노력을 요하는 일이었습니다. 가톨릭 신부들은 보통 성경이나 철학 등 교회 관련 학문을 전공하는데요. 저는 그때 처음으로 법학을 전공하겠다고 한 걸 후회했습니다.

 

그때 생각한 방법이 '일단 수업 시간에는 궁둥이를 붙이고 의자에 앉아 있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참 신선하죠? 당시 제게 이보다 더 신선한 생각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까요. 대단한 묘수란 게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고자 하는 저를 격려하고 싶었습니다. (68-69)

 

 

 

 

 

시간이 지나도 법학 공부는 따라가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교수님들이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는 부분을 메모해둔 뒤 기숙사로 돌아와 책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전도 찾아봤지만 제가 가진 이한사전은 용어 구분은 고사하고 오역도 많아서 더욱 혼란스러울 뿐이었습니다. 

 

궁리 끝에 우리말과 영어로 된 법률용어사전을 보내 달라고 한국의 지인에게 부탁해 손에 넣었습니다. 로마법의 경우 영어와 우리말로 설명된 걸 보면서 '아, 수업 시간에 들은 용어가 이거구나' 하며 머릿속에 전구가 반짝거릴 때도 있었죠. 이렇게 공부하는 데는 시간이 배 이상 걸렸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해야 수업 내용이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해도 마다할 수 없었습니다. 

 

참으로 지난한 과정이었지요. 공부하는 시간만 놓고 보면 이 역시 하나의 작은 터널일 수 있습니다. 고작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미련하게 공부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 때는 그보다 더 효과적이고 수월한 방법을 찾아 나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방법은 없었어요. 이 방법이 진저리가 나도록 싫고 지겨워서 더 쉬운 방법이 정말 없는 건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수업을 이해할 수 있었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이 이런 힘겹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공부의 초기 과정에서 좌절하고 포기합니다. (71)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는 결과가 나와 수없이 절망했습니다. 그때마다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공부를 늘 열심히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74)

 

 

 

 

 

하지만 실패할 기회를 아예 만들지 않는 이런 자세가 과연 좋기만 할까요? (74)

 

 

 

 

 

공부하면서 맞닥뜨리는 슬럼프나 실패의 경험은 우리를 좌절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실패는 우리의 수많은 부분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제 책 <라틴어 수업>에서 말했듯이 겸손한 사람이 공부를 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좌절하지 않는 태도는 겸손함에서 나옵니다. '맞아. 솔직히 난 아직 부족해. 실력을 더 쌓아야 해.' 이런 태도 말입니다.

 

겸손함을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고 인정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걸 정확히 아는 태도입니다. 실패를 통해 내가 다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기 때문에 잠시 실망하고 좌절감을 맛볼 수 있지만 그대로 멈추지 않습니다. 실패에 대한 기억, 무능한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잊고 새롭게 정비한 기억을 통해 자신이 가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나가는 겸손함이 공부하는 노동자의 자세입니다.

 

사실 저는 그리 겸손한 사람이 못 됩니다. 그러나 공부를 할 때 모르는 게 보이고 제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났기에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럽의 내로라하는 석학들의 수업, 그분들과 저의 격차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웠지요. 그분들처럼 되고 싶다는 열망은 있었지만 욕심부리진 않았습니다. 학문은 자동차처럼 순간 가속으로 앞차를 추월할 수 없기에 그저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듯 묵묵히 채워나갔습니다. 그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75)

 

 

 

 

 

공부하는 사람도 겨울나무와 같을 때 자기 자신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허세와 겉치레, 핑계와 변명을 다 버리고 나면 비로소 자신의 본모습이 보입니다. (...)

사실 아무리 외면하고 부정해도 본모습을 자기 자신은 알고 있습니다. (...)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나무와 같은 모습은 공부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겸손함 자세입니다. 그 자세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마주하고 묵묵히 수행해야 합니다. 겨울 동안 나무는 잎은 남아 있지 않지만 죽은 게 아닙니다. 다시 잎을 피울 때까지 묵묵히 찬바람을 견디며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움직이지 않은 나무가 사람보다 자기 관리를 더 잘합니다. 세찬 바람에 스스로 가지치기도 하고, 한 해 동안 풍성하게 키웠던 나뭇잎도 미련 없이 떨어뜨립니다. 둘러싼 껍질이 단단해지고 때로 불필요한 건 스스로 걷어냅니다. 사람이 지루하고 지난한 공부를 해나가는 시간과도 같습니다. (...)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76-77)

 

 

 

 

 

저는 좋은 목적을 가지고 공부하는 분들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한다고 믿습니다. 이런 분들이 사회적 통증을 줄여주리라 생각하는데, 공부하는 분들의 마음에도 그런 원의를 심어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맞닥뜨린 어둠은 진짜 어둠이 아닙니다. 불안하고 초초하다면 잘해나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현실이 가져다준 통증으로 인해 자주 아프고 힘들더라도 배움과 깨달음의 희열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그 아픔을 이기는 힘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그 배움을 가치 있게 또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문, 10쪽)

 

 

 


 

여기까지 읽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 내가 많이 부족하지.' 인정하니까 공부가 어려운 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부족한 나의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해보기로 했다.

 

한동일 작가는 공부가 단지 어렵다고만 말하지는 않는다. 공부 여정에서 만났던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리고 스스로를 격려한다.  공부가 어려울 때마다 항상 옆에 두고 읽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