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4일 일요일 아침 베를린
최근 몇 개월 동안 친구들을 만나 깊은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았다. 작년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사람들을 많이 못 만났지만 이번 해에는 줌이나 온라인 모임을 통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 6개월 간 한국에서 지내며 오랜 친구와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깊게 대화하다 보면 각자의 상처가 나오기 마련이다. 아마도 내 나이가 내 안의 상처를 마주할 수 있는 나이고, 친구들의 나이도 그러한 것 같다. 누군가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면 다른 이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나는 크고 작은 상처를 마주한 지 2년 반 정도가 되었다. 독일에서 버스 사고가 나고 삶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오래 서있어도 아팠다. 독일에서 나는 학생 신분이라 내가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고 덕분에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공부하는 나'를 잃게 된 순간, '존재하는 나'를 발견했다. 꼭 무엇인가 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잘 자고 잘 먹고 잘 소화하고 잘 걷는 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이 시기에 나의 상처를 마주했고 치유가 시작되었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정말로 다양한 곳에서 상처를 받게 되더라. 가족, 학교, 친구, 주변 환경 등. 그중 하나가 학교 폭력이었다. 친구는 자신이 학교 폭력을 당했고 너무나 힘들었다고 말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에게 학교 폭력의 공포는 실재했다. 학교 폭력의 기억은 그가 일상을 보내는 순간에, 세상을 보는 시각에,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 나는 그에게 어떠한 위로도 해줄 수 없었다. 섣부른 위로가 그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위로 대신 그가 일상생활에서 그 기억을 잘 관리하며 살아가는 것을 응원했다. 그에게는 남들이 보기에 잘 이해가지 않는 생활 습관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 그의 상처에서 온 것임을 알았다. 나는 항상 그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도 그는 따뜻함을 잃지 않았다. 학교 폭력의 기억이 그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의 본래 성격은 남아있었다. 그는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주변 사람에게 다정한 사람이다.
우리는 크고 작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나에게도 상처가 있고 친구들에게도 상처가 있다. 나는 내 상처를 치유하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기 시작했다. 최근 이 경험을 친구들과 나눈다. 우리의 대화가 서로에게 위로가 될 때 내 상처는 의미를 갖는다.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내 이야기를 들으니 위로가 된다고. 우리의 대화가 그에게 오래도록 위로가 되면 좋겠다.
이어지는 글
'일상 Alltag > 하루하루가 모여 heu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년 크리스마스 초콜릿 달력 -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내는 선물 (0) | 2021.11.23 |
---|---|
머리숱이 많아 기쁘다 (0) | 2021.11.23 |
우정 -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0) | 2021.11.13 |
금요 법 공부 - 독일 헌법과 한국 민법 (0) | 2021.09.24 |
수도원에서 보내는 하루 (0) | 2021.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