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1일 토요일 아침
지나영 교수의 유튜브 영상을 보았다. 그녀가 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나도 몸이 아픈 적이 있고 삶에 감사함을 느껴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몸이 아팠다. 크게 아픈 것도 아니었다. 작은 사고로 인한 일이었다. 2년 전 버스 사고로 꼬리뼈를 다쳤고 몇 개월 후에는 허리 통증도 있었다. 증상으로만 보면 별 일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학사 논문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바빴다. 꼬리뼈를 다치고 허리가 아프고 나서는 책상에 10분도 앉아 있기 어려웠다. 그때부터 나는 내 몸을 돌보는 법을 배워야 했다.
나의 몸
내 몸은 언제나 내 의지대로 따라주었다. 열심히 공부한 날에는 공부를 잘해서 좋았고 열심히 악기 연습을 한 날엔 연습이 잘 되어서 좋았다. 열심히 운동을 한 날에는 몸이 개운해서 좋았다.
학사 논문을 쓰던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논문 글쓰기가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가. 독일어로 써야하는 논문이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외국어 문제뿐만은 아니었다. 나는 논문 글쓰기 경험이 별로 없었으므로 논문 쓰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아는 게 없으니 시간을 들여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니 앉아있을 수 없었다. 서서 공부를 해보기도 했지만 허리가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몸이 아플 때는 침대에 누워서 쉬었다. 공부하는 시간보다 침대에 누워 쉬는 시간이 길었다.
꼬리뼈와 허리만 아픈 게 아니었다. 멀쩡하던 사랑니가 썩었고, 90도로 나있던 사랑니 때문에 어금니도 많이 썩어있었다. 면역력이 떨어졌던 시기 같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머리도 엉켜있었다. 머리카락에 힘이 없었다. 당시 나의 몸은 지쳐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학사를 마쳐가고 있었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공부한 새로운 학문에 마무리를 하는 단계였다. 잘하고 싶었다.
일상의 소중함 발견하기
버스 사고가 났던 시기는 코로나 팬더믹 1년 전이었다. 나는 코로나 팬더믹 이후의 삶이 그리 새롭지 않았다. 1년 전부터 집에서 생활해야했기 때문이다. 매일 가던 도서관에 갈 수 없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걸으면 허리가 아팠고, 허리가 아프면 도서관에서 오래 앉아있을 수 없었다. 내 방에서 공부해야 했다. 꼬리뼈 보호 방석을 의자에 올려두고 공부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다. 나는 일상의 소중함을 발견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블로그에 매일 글이 올라오던 시기이기도 했다. 매일 아침 요가를 하고 글을 썼다. 블로그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하루 종일 무엇인가를 기록했다. 하루 컨디션이 어땠고 어떤 공부를 했으며 무엇을 먹었고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물리치료를 받은 날은 물리치료가 어땠는지 기록했다. 정형외과 진료를 받으며 독일어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던 날에는 독일 의학 드라마를 보며 병원 독일어를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치과에 다녀와 기분이 울적한 날엔 작은 화분에 담겨있는 꽃을 샀다. 책상에 꽃 한 송이를 올려두는 시기이기도 했다. 매일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하루를 기록했다. 좋은 글을 읽고 좋은 영상을 보았다.
아파서 다행이야
누구나 인생에서 이런 시기를 갖기 마련이다. 나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몸이 아파서 다행이었다. 일찍 몸을 챙기기 시작했고 삶의 지혜도 배웠으니까. 삶에 감사하는 마음도 갖게 되었다. 돌아보니 나는 운이 좋았다. 아팠을 때 쉴 수 있는 방이 있었고 갈 병원이 있었다. 아픈 나를 이해해주는 교수님과 글쓰기 센터 선생님도 계셨다. 길게 통화하며 나를 이해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꼬리뼈와 허리 통증은 큰 병은 아니었다. 나는 작은 아픔을 통해 큰 배움을 얻었다. 몸을 돌보는 법을.
먹는 것을 바꾸어보았다.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것을 시도해보았다. 밖에서 사 먹거나 배달되는 음식을 줄이고 직접 요리했다. 과일과 야채를 많이 섭취하기 위해서 아침은 과일로 먹고, 점심은 채소를 많이 먹었다. 저녁에도 신선한 재료로 요리했다. 혀가 좋아하는 음식(건강하지 않지만 맛있는 음식)에서 몸이 좋아하는 음식의 맛을 알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일 아침 요가와 명상을 하고 충분한 산책을 했다. 홈트를 하며 근력운동도 시작했다.
몸을 사랑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아침에 일어나준 몸에게 고마워했다. 볼 수 있게 해주는 눈에게,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귀에게, 냄새 맡을 수 있게 해주는 코에게, 먹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입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몸 구석구석 고마움을 전했다. 내 몸은 있는 그대로 충분했다. 공부가 안 되던 날에도 내 몸은 잘 자고 잘 걷고 잘 먹고 잘 소화했으니 충분한 역할을 했다. 아프고 나서야 나는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랑하게 되었다.
마음을 사랑하는 연습은 예전부터 했다. 하지만 몸은 마음만큼 사랑해주지 못했다. 사랑해주지 못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했다. 몸을 사랑하니 마음을 더 잘 살필 수 있었다. 결국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것, 뇌도 몸의 장기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만의 매뉴얼
고민이 많을 때 걷는다. 몸을 움직여주면 마음도 괜찮아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실망하는 일이 생겼을 때는 '그래도 몸이 건강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잖아' 생각한다. 몸이 건강했기에 도전했고, 도전했으니 실패도 있기 마련이라고. 몸이 아팠을 때는 도전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으니까. 관심 있는 사람에게 고백했다 차였던 날에도 일기를 썼다. 학업이 안정되고 건강해서 누군가를 알아갈 수 있었고 내 마음도 보여주었다고. 시험에 떨어진 날에도 나에게 말했다. 나는 잃은 것이 없다고. 산책을 하며 걸을 수 있는 튼튼한 다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삶에는 어려운 일이 있기 마련이다. 이또한 내가 살아있어 마주하는 일이다. 건강하게 살아있어서. 2021년 목표가 감탄하기다. 아침에 일어나 새로 맞이하는 하루에 감탄한다. 뽀송뽀송하게 잘 마른 빨래에 감탄한다. 아침에 먹은 사과가 맛있어 감탄하고 등산 가서 마주하는 자연에 감탄한다. 내 주변에 있는 좋은 사람들에게 감탄한다. 감탄도 습관이라서 자꾸 하면 감탄한 일이 자주 생긴다. 일상을 기록할 수 있는 블로그가 있는 것도 감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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