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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Alltag/하루하루가 모여 heute

알록달록한 구슬을 모으는 사람

by 통로- 2021. 9. 3.

2021년 9월 3일 금요일 새벽 6시 in B





내 말을 듣던 친구가 말했다.

"네 이야기를 들으니 힐링받는 느낌이야.
나도 사실 나를 비주류라고 생각했어."







어제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화덕 피자와 리조또를 맛있게 먹은 후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길을 걸어 카페로 향했다. 따뜻한 캐모마일 차와 자몽에이드를 앞에 두고 대화를 이어갔다.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악기는 더 이상 하지 않느냐고.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사회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 음악을 그만둔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보니까 음악이 나를 많이 형성했더라고. 어릴 때부터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만났고 세상을 보았거든. 나의 여러 습관도 음악 덕분에 생겼고, 음악 덕분에 다양한 경험도 해보았어. 음대 다니며 들었던 교양수업, 교환학생, 봉사연주를 통해 사회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관심이 생겼지. 독일에서 학부를 마쳐갈 때 즈음 논문을 쓰며 느꼈어. 나에게는 이미 연구 주제가 있었다고. 오랜 시간 음악을 했기 때문에 내가 평생 연구할 주제가 생긴 거야.

사회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내가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어. 음대에 가지 않고 바로 사회학을 공부했다면 5년 빨리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을 거야. 예술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일반고를 갔다면 역사도 더 깊이 배웠을 테고. 통계학의 기초가 되는 수학도 잘 배우지 않았을까 싶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음악 했던 시간이 모두 의미 있더라. 나는 음악을 그만둔 게 아니였어. 연주 기술을 더 이상 매일 연마하지 않을 뿐이지 음악은 항상 내 곁에 있어라고. 지금도 음악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어. 일상과 연구에."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가 말했다.
"네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스티브 잡스 연설이 떠오른다. 스티브 잡스가 그랬잖아. 자신이 캘리그래피를 배우지 않았다면 애플도 없었다고."

나는 대답했다.
"맞아. 내 삶의 여러 점이 이어져서 현재의 나를 만들었어."


나는 카페 테이블에 손가락을 대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내가 인생을 조금 돌아간다고 생각해. 어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서 고민 없이 그 길을 가지. 하지만 나는 플루트를 하다가 비올라로 바꾸었고, 음악을 하다가 사회과학으로 바꾸었어. 남들보다 서툴고 느리지. 길을 돌아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

내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 비교적 늦은 나이에 비올라를 시작해서 항상 바쁘게 배워야 했어.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이루어내야 했어. 운이 좋게도 나는 악기를 빨리 배웠고 원하는 예술고등학교와 음악대학에 갈 수 있었지. 하지만 항상 숨이 턱까지 차는 느낌이었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악기를 시작한 애들과는 조금 달랐거든. 거기에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어. 독일에 와서도 마찬가지였어. 나는 음악을 하다가 사회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보통의 사회과학 전공생과는 다르더라고. 유학생이라 독일이라는 나라에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는 느낌도 받았고.

(책을 보여주며) 오늘 산 책이야. 책 제목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어. 제목을 조금 바꾸어서 '나는 행복한 경계인입니다'로 내 책을 쓰고 싶다고. 경계인이라는 개념은 학문에서 긍정적으로 쓰이지 않는 것 같아. 어느 문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의미거든. 나는 이 개념을 내 삶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써 보기로 했어. 나는 음악과 사회과학이라는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지만 어디에든 속할 수도 있지. 음악과 사회과학이라는 두 분야를 모두 아니까. 한국과 독일이라는 경계도 마찬가지야. 나는 여러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야. 행복하게 그 경계에 서있기로 했어.

어느 날 생각해 보니 나는 알록달록한 구슬을 모으는 사람이더라. 음악이라는 구슬, 사회과학이라는 구슬, 한국인이라는 구슬, 독일에서 공부하고 살며 느낀 경험이라는 구슬 등. 이 구슬은 모으는데 시간이 걸려. 나는 구슬을 모으느라 남들보다 일찍 무엇인가 성취하지 못하겠지. 하지만 언젠가 이 구슬들을 가지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거야."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친구가 말했다.
"네 이야기를 들으니 힐링받는 느낌이야. 알록달록한 구슬이라는 표현이 참 좋다. 나도 사실 나를 비주류라고 생각했어."

친구는 한국이 아닌 다른 문화권에서 학교를 다녔고, 새로운 학문을 다시 시작했다. 친구는 자신이 비주류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자신이 있는 분야에서 주류는 이러한 사람들인데 자신은 그곳에 속하지 못한 것 같다고. 새로운 학문을 시작하고 나서야 그전에 공부했던 학문이 자신을 형성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고. 그는 이어 말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자신을 알록달록한 구슬을 모으는 사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나의 이야기에 위로 받았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니 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는 이어 말했다.

"나도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니야. 아까 이야기했던 버스 사고 후에 나의 지난 삶을 돌아보았거든. 내가 아쉽다고 생각했던 부분들,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 실패라 여겼던 일을 떠올려보았어. 그런 과정에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어. 음악을 했던 시간을 아까운 시간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형성하게 해 주었던 시간으로 해석하게 되었어. 길을 돌아오며 살아왔던 나의 인생을 알록달록한 구슬을 모으며 사는 사람으로 재해석하게 되었어."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오는 길 우리의 대화가 떠올랐다. 내 이야기에 위로 받았다는 친구의 말이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내 삶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다니! 내가 했던 실수와 실패, 돌아온 길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좋은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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