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9일 일요일 아침 한국 내방
내가 언제 이 대화법을 익히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두 번째 남자 친구를 만나며 이 대화법을 자주 사용했으니 그 언저리가 아닌가 싶다. 나는 어떤 상황과 감정이 주어졌을 때 상대에게 말한다.
나: 너가 나에게 이렇게 말을 했지.
나는 네가 그런 의도가 아니었던 것을 알고 있어. 하지만 나에겐 그렇게 들렸네.
내가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아.
너 나에게 그런 의도로 말한 거 아니지?
상대: 아니야, 전혀 그런 의도는 없었어.
나: 나도 그럴 거라 생각했어. 네가 나에게 굳이 그럴게 말할 의도는 없었을 테니까.
내가 알고 있는 너는 그럴 사람이 아니거든.
내가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너의 말을 그렇게 받아들였나 봐.
예시를 들어보겠다. 밤늦게 학교 수업(온라인 강의)을 들어야 하는 나에게 상대가 말했다.
상대: 너 수업 듣기 싫은 거 맞지?
나:... 어떻게 알았어? 밤 늦게 수업 듣는 거 쉽지 않다.
상대: 그래도 졸업은 해야지.
나: ...
아무 문제가 없는 대화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졸업은 해야지'라는 말을 상대의 의도와 매우 다르게 받아들였다. 나는 그와의 대화를 멈추었다. 내 표정이 굳어져버려 상대도 나의 기분을 알아챘다. 나는 그에게 잠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왜 내가 그의 말에 서운함을 느꼈을까? 종이 위에 적어보았다. 찬찬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상대의 말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다. 내 경험이 그의 말을 그렇게 받아들인 거였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독일에서 학사 공부를 시작하고 나의 큰 걱정 중 하나는 '졸업은 할 수 있을까'였다. 학점을 거의 다 따고 학사 논문 쓸 때도 '통과할 수 있을까? 졸업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학사 논문을 바쁘게 써야 할 당시 버스 사고가 났다. 나는 꼬리뼈와 허리를 다쳐서 책상에 앉아있을 수 없었고 학사 논문은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얼마나 타들어갔는지. 졸업은 해야 하는데. 나는 좌절했다. 내 마음을 어르고 달래 책상에 앉았고 학사 논문을 마칠 수 있었다. 지난한 과정이었다. 결국 나는 해냈다. 하지만 당시의 감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졸업은 해야지' 상대의 말을 듣는 순간 학사 논문을 쓰던 어려웠던 시간이 떠올랐다. 나는 상대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졸업이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왜 그렇게 쉽게 말할까?' 여기까지가 나의 입장이다.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보자. 수업을 들어야 졸업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상대는 있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상대는 내가 석사를 졸업해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상대는 나의 버스 사고를 알고 있지만 자세히는 몰랐다. 내가 힘든 시간을 보냈구나 하는 정도만 안다. 상대는 내가 그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대는 내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서 다시 나로 돌아왔을 때, 그러니까 유쾌한 나로 돌아왔을 때 나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에게 내가 사고 후 느꼈던 모든 일과 감정을 자세히 말해 줄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래도 졸업은 해야지'라는 말이 나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상대에게 연락했고 대화했다.
나: 네가 나에게 '그래도 졸업은 해야지'라고 말했지. 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서운한 마음이 들었어. 그 말이 무심하게 들렸어. 하지만 나는 네가 나를 서운하게 하기 위해 그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 지금까지 봐온 내가 너는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이었거든.
내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왜 이런 감정을 느꼈는지. 나에게 '졸업'은 학사를 하는 동안 큰 걱정거리였어.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하다보면 졸업도 하게 된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면서 설레고 즐거웠던 순간도 많았지만 시험에 통과하지 못해서 좌절했던 순간도 있었지. 하고 싶은 공부를 용기있게 시작했는데 내 자신이 너무 부족하게 느껴지더라. '졸업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학사하는 동안 항상 생각했어.
나는 학사 논문을 시작하면서 진짜 기뻤어. 논문만 끝내면 졸업이니까. 목표 지점에 거의 다가왔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버스 사고로 꼬리뼈랑 허리를 다쳐버렸어. 책상에 앉아있을 수 없었어. 물리치료를 다녀오면 몸이 노곤해졌어. 집중해서 논문을 쓸 수 없었지. 비유를 하자면,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졌는데 다시 일어나려고 하면 넘어지고 다시 겨우 일어나려고 하면 넘어지는 느낌이었어. 그래서 네가 말한 '그래도 졸업은 해야지'가 나의 아픈 부분을 콕 찌르는 바늘처럼 느껴졌어. 나는 학사 졸업을 했지만 아직 논문 쓰며 어려웠던 감정이 남아있나 봐.
네가 나에게 그런 의도로 말하지 않았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내가 이렇게 느꼈네.
석사와 학사는 다르잖아. 나는 석사를 훨씬 수월하게 하고 있어. 또 석사는 2년이니까 조금 늦어진다고 해도 학사처럼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어쩌면 졸업이 학사보다 수월할 수도 있을 거야.
내가 이렇게 말하면 상대는 고마워한다.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한 부분을 말해주어서 고맙단다. 자신의 잘못이라 말하지 않고 내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알려주어서 고맙다고 말한다. 두 번째 남자 친구가 그렇게 말했고 그 이후에 만난 사람들도 그렇게 말해주었다.
20대 전후까지의 인간관계는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가 부모님이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연인관계에서 인간관계를 배운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나는 누군가를 만나며 나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솔직한 감정을 말하지 못하던 나는 어느새 내 감정을 분석해서 말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와 상대는 너무 달라서 내가 말로 설명해주지 않으면 상대는 나를 알 수 없더라.
상대와 작은 문제가 생겼을 때 나는 나의 감정을 관찰한다. 내가 왜 그런 감정이 드는지 이유를 찾아본다. 그리고 그것이 남자와 여자의 차이인지 생각해본다. 그 후에는 우리가 자라온 환경의 차이를 떠올려본다. 나는 삼 남매의 둘째로 태어났고 음악을 했고 우리 부모님의 영향을 받으며 자란 것 등 나의 환경(문화)적 요인을 찾아본다. 사회학과 통계학을 공부하며 생긴 습관이다. 사회학은 왜 이런 사회현상이 일어났는지 분석하는 학문이다. 사회학을 공부하다보니 어느새 내 생각과 감정도 분석하고 있더라. 사회학이 모든 사회현상을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나의 모든 감정을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며 찾은 몇 가지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더라. 그 이유가 남녀의 차이인지, 환경적 차이인지 설명해주면 상대는 잘 이해한다. 나는 나를 알 수 있어 좋고, 상대도 나를 알 수 있어 좋다.
이러한 대화법은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쓸 일이 없다. 나는 친한 친구에게도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둔다. 건강한 거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인과 가족에게는 이 대화법이 필요하더라. 가까운 사이니까 갈등이 일어날 일도 많다. 달리 생각해보면 나에게 이 대화법을 사용할 만큼 가까운 사람이 있다는 의미다. 기뻐할 일이다.
어제는 연인관계에서 배웠던 대화법을 처음으로 엄마와 대화할 때 써보았다. 요즘 부모님과 함께 지내며 부모님의 잔소리가 나의 일상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딸이 좀 더 잘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왜 부모님의 말씀을 잔소리로 받아들이는지 생각해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솔직하게 나의 감정을 이야기했고 엄마는 나를 잘 이해해주셨다.
연인관계에서 익힌 대화기술이 부모님과의 대화에도 쓰이다니! 나는 좋은 사랑을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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