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4일 수요일 아침
2년 전 버스 사고가 났다. 나는 운이 좋게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 부러진 곳도 없었고 입원하지 않아도 됐다. 꼬리뼈 타박상과 허리를 다쳤을 뿐이었다. 큰 사고가 아니었음에도 내 일상은 달라졌고 나는 자주 실망했다.
내 삶이 그대로 멈춰있는 것만 같았다. 기도를 했다. 미사책 앞에 있던 기도문을 소리 내어 읽으며 오늘 주어진 하루에 감사했다.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내 인생에서 아름다웠던 시간뿐 아니라 어렵고 힘들었던 시간에도 감사했다. 내가 내면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기에.
사고 두 달 후 찬란한 봄날이었다. 일요일 정오 미사를 끝내고 나가는 길 성당 앞에서 파는 작은 기도책을 발견했다. 일상에서 쓰는 독일어로 쓰인 기도문이었다. 집에 와서 기도책을 펼쳐보니 <아픈 사람을 위한 기도>가 있었다.
처음 이 기도를 드렸을 때 눈물이 나왔다. 기도문이 나를 위로해주었기 때문이다. 꼬리뼈와 허리 통증 때문에 10분도 책상에 앉아있지 못하던 때였다. 기도문에는 나의 학업과 일상, 행복을 앗아가 버린 통증과 실망한 내 마음이 잘 그려져 있었다.
2년이 지난 요즘 아침마다 독일어 기도문, 법정 스님의 일기일회, The Daily Stoic (스토아 철학을 쉬운 영어로 풀어놓은 책)을 읽는다. 평소 독일어 기도문을 낭독할 때는 미사책에 있는 기도문만 본다. 오늘은 작은 기도책도 읽고 싶었다. 작은 기도책의 <아픈 사람을 위한 기도>를 낭독했다. 2년 전 내가 떠올랐다. 그 시간을 잘 견디고 있던 과거의 내가.
(아침마다 기도를 낭독하며 녹음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 한 녹음이 아니라 실수도 많다. <아픈 사람을 위한 기도> 낭독을 다시 들어보니 잘못 읽은 부분도 있더라. 그래도 올려본다. 다시 읽으면 처음 읽었을 때 그 감정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
'하느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해주세요'라고 말하기 어려워요.
꼬리뼈와 허리가 너무 아파요. 힘이 나지 않네요.
친구들 만나기, 도서관 가기, 수업 듣기, 공부하기, 작은 행복 발견하기 등
제가 일상으로 누리던 것이 더는 일상이 아니게 되었어요.
제 아픔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게 해주세요.
제가 힘들게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이 의미있는 시간이 되게 해주세요.
제 아픔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거 알아요.
제가 이 사실을 알고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그 사람들에게 축복이 가득하길 바랄게요.
(한국어로 기도문을 발췌 · 요약하고 내 상황을 덧붙였다. 기도문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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