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5일 부활절 휴일 월요일
오늘 친구들과 온라인에서 만나 근력 운동을 하고 함께 음악을 들었다. 친구 B가 선곡한 성시경의 <태양계>는 정말로 아름다운 곡이었다. 느린 왈츠를 추는 느낌이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부엌 정리를 하며 <태양계>를 반복하여 들었다. 가사에서 나의 지난 사랑이 떠올랐다. 이별 후 나의 모습이. 어쩔 줄 몰라하던 내가.
나는 매뉴얼 작성하기를 좋아한다. 공부가 안 되는 날, 잠을 못 잔 날, 교수님 면담이 있는 날, 면담 후 공부를 계속해야 하는데 지친 날, 시험 전 날, 참고문헌이 너무 어려워 머리가 지끈거리는 날, 소논문을 쓰는 내 글쓰기 실력이 너무 부족해 보일 때 등. 공부를 위해 작성한 매뉴얼이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넘어왔다.
첫 연애를 끝냈을 때 나는 처음 가져보는 감정에 당황했다. 외로움, 슬픔, 아쉬움, 무기력함 등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그 시간을 견뎌내고 두 번째 연애를 시작했을 때, 나를 위한 이별 매뉴얼을 작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만 하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오늘 성시경 <태양계>를 듣고 미루었던 이별 매뉴얼을 작성하기로 했다.
나의 이별 매뉴얼이라 모두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 다른 이를 위해 쓴 글이 아니라 과거의 나를 위해 쓴 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이별을 경험하니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한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이별한 과거의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
많이 아플 거야. 배도 안 고프고 의욕도 안 생기고. 아주 당연한 현상이야. 괜찮아.
울컥할 거야. 아무 이유 없이. 펑펑 울어. 괜찮아. 원래 이별 후에는 그런 거야.
그와 함께했던 시간과 추억은 없어지지 않아. 익숙한 공간에서 그가 그리울 때 그와의 추억을 사진첩에 넣는다고 생각해봐. 영상처럼 스쳐가는 장면은 영상집에 넣어둬. 네가 사랑했고 사랑받았던 순간은 항상 그곳에 존재할 거야.
잘했어. 잘 한 선택이야. 네가 이별을 고했든 그가 이별을 말했든 서로에게 좋은 선택이었어.
그는 참 좋은 사람이었지? 그를 만나서 얼마나 다행이야. 좋은 사람을 만나서 정말 행복했지? 좋은 시간이었다.
아마도 너는 지금 인터넷에 이별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겠지. 이별 후기, 재회 후기도 많이 읽을 거야. 하지만 냉정하게 네 연애를 돌아봐. 재회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아니면 꼭 필요한 이별이었니?
꼭 필요한 이별이었다면 너 스스로를 위해 그에게 연락은 하지 말자. 그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천 번은 들 거야. 그럴 때 그에게 편지를 써. 네 감정을 그대로 써봐. 마치 그 앞에서 말하듯이. 손글씨로 써도 좋고 노트북으로 써도 좋아. 마음껏 써. 그리고 편지는 잠시 보관해두자.
핸드폰 그의 연락처에 메모를 남겨둬. 네가 그에게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써 둬. 일화를 적어두어도 좋아. 그리고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도 써봐. 네가 그에게 연락하고 싶을 때 그 메모를 봐. '나는 그에게 좋은 사람이었고, 우리는 이런 이유로 헤어졌구나.' 후회가 없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들 거야. 그럼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 줄어들 거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해. 친구에게 연락할 때 네가 이별해서 마음이 아프다고 먼저 말해. 그럼 친구가 이해해줄 거야. 친구도 이별해보았고 사랑해보았으니까 널 이해해줄 거야.
부모님에게 이별을 말하기 쑥스럽다면 학업이나 일에서 어려움이 있다고 핑계 대고 오랫동안 통화해봐. 세상에서 너를 가장 사랑해주시는 분들이잖아. 뜬금없이 언니에게 연락해도 괜찮아. 동생에게도 그냥 연락해봐. 너는 지금 가족이 필요하잖아. 가족이 뭐니? 힘들 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이잖아. 세상에서 널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잖아.
순례길을 시작해봐. 순례길은 어디에서든 시작할 수 있잖아. 산티아고를 향해 걸어봐. 한국에 있든 독일에 있든 그 어디에 있든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어. 네가 첫 이별을 하고 부모님과 함께 걸었던 그 길에서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았니? 이해인 수녀님 시에서처럼 '만났다 헤어지는 게 인생이야'라고 하잖아. 그가 잠시 네 곁에 있어주어서 얼마나 행복했어. 이제 너는 네 길을 가고 그는 그의 길을 가는 거야. 우리는 우리가 만났던 시간 동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지. 그 시간은 네 마음과 그의 마음에 영원할 거야.
잘했어. 잘 헤어졌어. 헤어지는 게 맞아. 그를 사랑하면서 이유 없이 설레고 기분 좋았잖아. 아무런 이유 없이 행복했었지? 그래서 이별 후에 슬픔도 오는 거야. 슬픔도 사랑에 포함된 거야. 사랑한 만큼 슬플 수 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야. 지난 사랑에서도 그랬잖아. 잘 견딜 수 있어. 사랑하고 슬픈 게 사랑을 해보지 않은 것보다 낫잖아.
힘내!
3번에 이어지는 이야기 - 시간이 지나면 사진과 영상을 다시 꺼내볼 수 있을 때가 올 거야. (이별 후 오랜 시간이 지나 쓸 수 있었던 사랑에 관한 글 모음)
'일상 Alltag > 하루하루가 모여 heu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월에 내리는 눈 (0) | 2021.04.07 |
---|---|
시간을 가치있게 쓴 하루 (0) | 2021.04.07 |
연휴 3일 째 - 보스스 보스스 꽃나무 소리 (0) | 2021.04.04 |
Radischen 친구랑 수다 떨면서 그린 그림 (0) | 2021.04.01 |
합창곡 - 못잊어 (김소월 시, 조혜영 작곡) (0) | 2021.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