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2일 화요일 밤
아빠는 내가 어떤 사람 만나면 좋겠어?
나: 아빠는 내가 어떤 사람 만나면 좋겠어?"
아빠:....
나는 아버지가 이런 대화에 익숙하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아버지에게는 예시가 필요했다.
나: 그러니까 지난번에 OOO 선생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더라고. 일상을 함께 할 때 편한 사람을 만나면 좋다고. 같이 장을 보고, 거실에 앉아 책을 볼 때 편안한 사람.
아빠: 가치관도 비슷하면 좋겠지? 서로에게 솔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을 만나도 함께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
아버지는 인생을 함께하면 좋은 사람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해주셨다. 내가 어릴 적 들어 본 이야기였다.
아빠와 통화를 끝내고 든 생각. 아! 아빠는 연애를 한 번만 했지. 그것도 소개팅을 통해 만난 엄마와 바로 결혼을 했으니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첫 눈에 어떻게 발견하는지 고민은 별로 하지 않으셨겠구나. (아빠와 엄마는 아빠의 외삼촌 신부님 사제관에서 소개팅을 하였고, 결혼을 전제로 만남을 가졌다.) 아버지는 어떤 사람과 살면 좋을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면 좋은지는 잘 아시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런 사람을 어떻게 찾아내는지가 궁금한데 말이다. 내 질문이 아빠께는 너무 어려웠겠다. 내가 나중에 남자 친구랑 지내며 어려운 점이 있을 때 그때 아빠에게 여쭈어보아야지.
아빠와의 대화
나는 아빠와의 대화를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아빠와 많은 대화를 했다. 수다스러운 나의 이야기를 아빠가 잘 들어주셨다. 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일을 하시는 아빠는 내가 어릴 적 기사 역할을 하셨다. 아침마다 아빠는 나를 학교에 데려다주시고 내가 플루트 레슨 갈 때도 운전을 하셨다. 나는 왼쪽 눈이 좋지 않아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서울의 큰 병원으로 검진을 받으러 다녔다. 아빠와 함께 고속버스를 타고 가며 나누었던 대화(주로 내가 말했고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휴게소에서 먹었던 맛있는 음식(엄마와 달리 아빠는 내가 먹고 싶다는 거 다 사주셨다), 병원에서 오래 대기하며 아빠 옆에 앉아있었던 일이 기억난다. 중학교 시험기간에 독서실에서 새벽 1-2시까지 공부했을 때도 아빠는 항상 나를 데리러 오셨다. 중학교 3학년 말 예술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했을 때도 아빠는 나의 기사 역할을 하셨다. 중3 때 나는 매일 피아노 학원에서 밤 12시 가까이 비올라 연습을 했다. 추운 겨울 아빠는 미리 와서 나를 기다리셨다. 내가 평소보다 늦게 연습을 끝내도 아빠는 항상 나를 웃는 얼굴로 맞아주셨다. 아빠는 기다리는 걸 조금 지루해하시는데, 나에게만큼은 달랐다. 연습을 끝내고 아빠 차에 들어갈 때면 따뜻한 공기가 느껴졌다.
우리 가족에서 나라는 사람
어제 클럽하우스 순례길 방이 끝나고 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순례길 방에서 2015년 순례길 이야기를 하며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부모님께 왜 내가 2015년에 순례길을 걷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어제 처음으로 아빠께 그 이유를 말했다.
"아빠. 내가 2015년 5월에 전화해서 아빠랑 엄마 보고 싶다고 했던 거 기억나? 한국 가고 싶은데 소논문이 많아서 못 간다고 했던 거. 나 그때 사실 처음으로 대학에서 소논문 떨어지고 남자 친구와 헤어졌어. OO 알지? 그 애랑 헤어지고 너무 외로운 거야. 나는 살면서 외로움을 거의 느껴보지 못했는데 그때는 깜깜한 우주에 혼자 있는 것 같더라고. 사실 괴팅엔 부모님도 계시고 좋은 친구들도 있었는데 그렇게 느껴지더라."
나는 왜 5년 전에 이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까? 우리 가족이 연애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소논문 떨어졌다는 소식으로 부모님을 걱정 시켜드리지 않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을테고. 호기롭게 새로운 공부를 한다고 큰 소리 쳐놓고 잘 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창피했을 수도 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이었겠지.
우리 가족이 연애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엄마, 아빠 모두 첫 만남으로 결혼했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나이었으니 두 분이 서로의 첫사랑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짝사랑도 첫사랑에 포함되니 말이다. 하지만 처음 사귄 사람은 확실하다. 언니도 처음 만난 사람과 결혼했다. 그러니까 나를 뺀 우리 가족은 사랑하는 이성과 이별해 본 경험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별 후 질질 짜는 모습을 가족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나는 우리 가족에서 조금 특별한 사람이다. 나쁘게 말하면 좀 이상한 사람이다. 예술을 한 사람도 나뿐이고 글을 쓰는 사람도 나뿐이다. 엄마의 말에 꼬박꼬박 말대답을 했던 자식도 나 뿐이다. 둘째로 태어난 환경적 이유도 있겠지만 내가 좀 다르기는 하다. 아빠는 모범생이자 착한 아들이었다. 엄마는 말 안해도 스스로 하는 딸이었다. 언니도 혼자서 잘 했다. 가족에 한 명 있을까말까 하는 말 잘 듣는 아들과 딸이 아빠와 엄마였다. 그리고 언니였다. 그런 아빠와 엄마가 만나 언니를 키우다 나를 만났으니 놀라셨을 만도 하다. 나는 가족에 한 둘 있는 말 좀 안 듣는 자식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빨리 지루해해서 이것저것 해보는 어린이였다. 친한 친구도 여럿 사귀었고 반장도 나가고, 무대에서 악기 연주도 하는 아이였다.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 가족에서 나 뿐이다. 엄마 말씀이 부당하다고 여겨지면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자기 주장을 하는 딸이었다. 내가 조금 다른 사람이라 우리 가족에서 가장 연애를 많이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절대적으로 많은 연애는 아니지만 엄마, 아빠, 언니가 단 한 사람과 연애하고 결혼했으니 말이다. 나는 요즘 어떤 사람과 만나게 될지 생각한다. 첫 눈에 끌리는 사람과 내가 편하게 만나는 사람이 다르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조금씩 천천히 빠지는 사랑이 좋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사랑도 그만의 매력이 있지만, 나는 따뜻한 사랑을 하고 싶다.
아빠, 오늘 아빠랑 통화해서 정말 좋았어
전화 통화를 끝내며 '아빠, 오늘 아빠랑 통화해서 정말 좋았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우리 가족에서 나 뿐이다. 모두 오글거려서 못 한다. 하지만 나는 적극적으로 이런 오글거리는 말을 하며 가족 분위기를 바꾸어볼 생각이다. 우리 가족은 포옹도 거의 안 했다. 내가 독일에 온 후 독일의 포옹 문화가 너무 좋아서 부모님 뵐 때마다 포옹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제는 어색하긴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면 서로를 꼭 안는다. 아빠와의 대화가 좋았다는 나의 말에 아빠는 어색하게 '응 그래-' 하며 전화를 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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