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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Alltag/하루하루가 모여 heute

블로그가 주는 작은 기쁨 - 아닌 것, 배우 공유, 홀로 사는 즐거움, 코로나, 기숙사, 말하는 대로

by 통로- 2020. 11. 29.

2020년 11월 28일 토요일 저녁

 

아침에 일어나 블로그 유입경로를 보았다. 나는 유입경로를 즐겨 본다. 누가 어떻게 내 블로그에 들어왔는지도 알 수 있지만 그 경로를 따라가 보면 나와 비슷한 주제로 쓴 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로그가 주는 작은 기쁨이다. 

 

 

 

 

오늘은 처음 보는 유입 검색어가 있었다. [공유가 낭독한 시]였다. 나는 공유가 낭독한 시를 블로그에 올린 적이 없는데? 유입경로를 따라가 보니 배우 공유가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소개한 에린 핸슨 <아닌 것>이라는 시였다. 공유의 목소리로 <아닌 것>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검색어로 들어온 사람들은 내 블로그에서 <공유 목소리로 듣는 스페인 순례길>글을 읽었을 것이다.)

 

 

 

 

 

 

 

 

아닌 것

- 에린 핸슨

 

당신의 나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입는 옷의 크기도

몸무게와

머리 색깔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의 이름도

두 뺨의 보조개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이고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이다

 

당신은 아침의 잠긴 목소리이고

당신이 미처 감추지 못한 미소이다

당신은 당신 웃음 속 사랑스러움이고

당신이 흘린 모든 눈물이다

 

당신이 철저히 혼자라는 걸 알 때

당신이 목청껏 부르는 노래

당신이 여행한 장소들

당신이 안식처라고 부르는 곳이 당신이다

 

당신은 당신이 믿는 것들이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당신 방에 걸린 사진들이고

당신이 꿈꾸는 미래이다

 

당신은 많은 아름다운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당신이 잊은 것 같다

당신 아닌 그 모든 것들로

자신을 정의하기로 결정하는 순간에는

 

<마음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p. 54

 

 

 

시를 들으니 법정 스님 글이 떠올랐다. 2017년 다이어리를 책장에서 꺼냈다. 내가 손글씨로 옮겨 적은 법정 스님 글을 읽어보았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물으면 너무나 막연하다. 

구체적인 삶의 내용은 보고 듣고 먹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함이다.

따라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말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또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그 사람의 현 존재다. 

자, 그러면 나 자신은 오늘 어떤 삶을 이루고 있는가 한 번 되돌아보자.

 

<홀로 사는 즐거움> 법정, p.15

 

 

내가 살고 있는 기숙사에는 다양한 국적을 가진 친구들이 산다. 한국, 독일, 페루, 파나마, 중국, 이란. 처음에는 그들이 어떤 나라 사람인지가 먼저 보였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들의 이름과 나라, 성별, 전공뿐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의 출신 국가를 떠올리지 않는다. 어떤 요리를 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며 어떤 꿈을 가지고 있고 언제 미소를 지으며 어떤 운동을 즐겨하는지로 그들을 정의한다. 

 

기숙사에서는 여섯 명이 부엌과 화장실 두 개를 공유한다. 이번 주 화요일 저녁 하우스메이트 한 명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나머지 다섯 명은 그날 저녁에 모여 회의를 했다. 코로나 확진자 하우스메이트를 위해 하루에 한 명씩 요리를 담당하기로 했다. 원래 요리하는 양보다 조금 더 만들어 확진 판정을 받은 하우스메이트에게 주기로 했다. 또 우리 다섯 명 중 감염자가 있을 수 있으니 화장실과 부엌을 사용할 때는 마스크를 쓰기로 했다. 부엌을 쓰고 나면 소독을 하고 밥은 방에 가져가 먹기로 하고 회의를 끝냈다. 다음날인 수요일 아침 나는 코로나19 핫라인에 전화를 했다. 우리 모두 지역 보건소에 신청서를 보냈다. 목요일에는 네 명이 병원에서 코로나19 검사을 받았다. 저녁에는 여섯 명이 각자 방에서 줌 미팅(Zoom Meeting)으로 만났다. 앞으로의 계획, 부엌과 화장실 사용법을 구체적으로 정했다. 금요일에는 마지막 한 명도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토요일 오후 우리 다섯은 검사 결과를 받았고 모두 음성이었다. 한 집에 살면서 전염되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고 하던데 정말 다행이었다. 

 

줌 미팅을 하며 찍은 사진

 

 

 

 

 

 

 

 

 

 

 

'유 퀴즈 온 더 블록' 공유 편을 보았다. 방송인 유재석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질문에 배우 공유는 훅 하고 진지한 대답을 했다. 나는 요즘 공유가 지나왔던 시기인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저녁에는  '말하는 대로' 노래를 들었다. 유재석이 자신의 20대를 떠올리며 가사를 쓴 후 가수 이적과 함께 만든 노래다. 나도 말하는 대로 조금씩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내 인생이 정말로 내가 말하는 대로 되려는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보다 인생을 더 오래 산 선배가 그렇다고 하니 나도 그렇게 믿기로 했다. 현재의 나는 5년 전의 내가, 10년 전의 내가 말하던 모습이니 말이다. 10년 후, 20년 후의 나는 현재 내가 말하는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