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대화

2020. 12. 3. 06:38일상 Alltag/하루하루가 모여 heute

2020년 12월 둘째 날

 

 

 

Es ging auf acht Uhr zu, und die Sonne senkte sich tiefer über dem Horizont.[...] Rosa und orange gefärbte Wolken reflektierten das letzte Tageslicht,[...](Seite 16 und 18).von John Strelecky, Das Café am Rande der Welt.

 

 

좋은 대화를 했다. 온라인 스터디 그룹에서 알게 된 친구와 줌(Zoom)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긴 대화를 했다. 그 친구와는 매일 아침과 오후 온라인 스터디 그룹에서 반갑게 인사만 나누던 사이였다. 어느 날 약속 시간보다 일찍 줌 미팅에 온 우리는 잠깐 대화를 나누었고 며칠 뒤 저녁 스터디 때 둘만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저녁을 먹으며 긴 수다가 시작되었다. 

 

둘 다 렌틸콩 수프(Linsensuppe)를 좋아해서 렌틸콩 수프를 앞에 두고 수다 떠는 계획을 세웠지만 우리 모두 저녁에 시간이 없어 간단한 요리를 만들었다. (렌틸콩 수프는 직접 만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마트에서 사 와서 데우는 방법도 있지만 자가격리 때문에 마트에 갈 수 없었다.) 미역국을 앞에 두고 긴 수다가 시작되었다. 수다라고 표현하기엔 제법 진지한 내용이 많았다. 

 

저녁 메뉴 이야기로 대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저녁 식사로 2인분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하우스메이트 E를 위해 기숙사(WG)에 사는 다섯 명이 한 명씩 돌아가며 그 친구를 위한 식사를 준비한다. 오늘은 내 담당이었다. 일주일 동안 하우스메이트 다섯 명이 주는 음식을 먹던 E는 고기가 그리웠다. 다섯 명 중 나를 포함한 세 명은 고기 요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 나머지 두 명 중 한 명은 고기 요리를 하고 다른 한 명은 확실치 않다. E는 아주 오랫동안 고기를 먹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E는 고기와 치즈, 고기가 들어간 캔에 담겨 있는 수프를 주문해 하우스메이트에게 요리를 부탁했다. 나는 오늘 E를 위한 점심으로 고기가 들어간 수프(캔 스프라 데우기만 함)와 햄을 준비했다. 햄이 부족했었던지 E는 나에게 문자를 보내서 햄을 더 달라고 했다. 치즈도 함께. 나는 조금 귀찮은 마음이 들었지만 오랫동안 고기를 못 먹은 E의 심정이 떠올라 얼른 가져다주었다.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웃으며 들려주니 친구도 웃었다. 

 

독일어와 철학을 공부하는 친구와 사회학 이론 시간에 배운 철학자 푸코 이야기도 했다. 내가 푸코 텍스트를 읽었다고 하니 친구가 어떤 텍스트인지 물어보았다. 나는 책장에서 현대사회학 이론 수업 파일을 꺼내 수업 계획표를 보고는 '감시와 처벌'라고 말했다. "그걸 다 읽었어?"라고 묻는 친구에게 나는 웃으며 "당연히 아니지! 220쪽에서 250쪽까지 30페이지 읽었어." 말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한 권 통째로 읽은 책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야." 친구도 막스 베버 책을 안다고 했다. 나는 친구에게 한 권 다 읽어본 철학책을 물어보았다. 친구는 데카르트의 <성찰>을 읽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데카르트의 발음을 못 알아들어서 (한국어 발음만 알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철학자인 것 같은데?"라고 하니 친구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말한 철학자야." 말한다. 나는 "어? 나 그 말 아는데?"하고 찾아보니 데카르트였다. 나는 데카르트의 프랑스어 발음과 한국어 발음을 비교해보며 과거에는 일본(일본어 번역)을 통해 학자 이름과 학술 용어가 한국으로 들어와서 한국에서 그렇게 발음하나 보다고 말했다. 친구는 일본어에 받침 발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며 한국어도 그렇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답하며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을 소개했다. 

 

중간에 대화를 하다가 잠시 쉬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 집 초인종이 울렸기 때문이다. 앞집에 사는 사람이 우리 집 코로나 상황에 대해 물으러 온 것이었다. (긴 이야기는 생략한다.) 하우스 메이트 E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확진자와 함께 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코로나가 정말 가깝게 다가온 느낌이다. 사회학 개론 수업 때 매운 '낙인(이론, 효과)'가 떠오르기도 했다. 코로나를 가까이서 경험하고 나니 코로나 확진자가 겪는 사회적 낙인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이 이야기를 친구와 했다. 사회적 낙인을 주제로 시작된 대화는 차별과 인종차별로 이어졌다. 

 

전공 이야기도 했다. 내가 왜 독일에 왔는지,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아주 어릴 적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또 한국에서 음악 대학을 다니며 아르바이트와 봉사 활동을 하며 다른 전공을 공부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나의 길고 긴 전공 선택의 이야기를 했다. 독일어로 진로 선택 과정을 말하며 내 독일어가 참 많이 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중요한 가치, 변화, 그 과정을 외국어로 말하고 상대가 이해한다는 게 신기했다. 아직 배울 게 많은 독일어지만 매일 즐겁게 독일어를 익히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기로 했다. 

 

쓰고 싶은 내용이 많지만 오늘은 시간이 늦어서 여기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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