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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Alltag/시와 글과 영화와 책 Bücher

봉준호 "자기가 뭔가를 좋아한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면" Special Lecture by Director Bong Joon-ho

by 통로- 2020. 2. 21.

2020.2.20 목요일 오후 베를린

브릿지TV - 아카데미 오스카 4관왕 봉준호 감독의 특별한 강의 1부

 

질문자: 그래서 저는 가끔 학생들에게 필사를 권해보기도 해요.

좋은 영화, 자기 취향에 적합한 영화를 필사해 보라. 그것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봉준호: 아주 좋은 방법이고요. [중략]

자기가 뭔가를 좋아했었다면 왜 좋아했었는지, 취향을 취향으로만 남겨놓지 말고 

내가 이거를 좋아한 이유가 뭔지를 깨닫게 된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려고 이 일을 하는 거잖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를 알게 되는 시점, 

자기가 좋아했던 영화의 시나리오를 한 번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연어가 이렇게 거슬러 올라가듯이 시나리오를 구해서 한 번 배껴 써 보면 그것도 좋은 일일 것 같아요.

(22:00-24:09)

 

 


봉준호:

저도 시나리오를 받아서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는 왜 없겠어요.

시나리오 쓸 때 너무 힘들기도 하고.

 

여러분의 색깔과, 여러분의 취향과 여러분만이 가진 뉘앙스를 펼쳐야만 되는 시점에서는

장면 하나하나를 직접 녹여낸 시나리오를 직접 쓰시는 게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이고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18:55)

 


 

 

질문자: 시나리오를 쓰는 감독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봉준호:

로버트 맥키라는 분이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책도 썼더라고요.

주변에 보면 현역 감독이나 작가님도 그런 책을 봐요.

저도 초반 1/3 정도는 읽어봤어요. 책 좋더라고요.

구구절절 맞는 말인데, 그러면 그 책을 다 읽고 나면 다 잘 써야 될 거 아니에요, 시나리오를.

그런데 그런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왜 안 되는 걸까, 그런 의문이 생기지 않아요?

그 책의 내용은 틀린 거는 하나도 없어요. 다 맞는 말인데

 

그래서 뭘까 생각이 드는데, 결국은, 이게 원론적인 얘기라 실망하실지 모르겠지만

본인이 계속 써보면서 자기가 썼던 것을 놓고

자기가 가장 최근에 썼던 시나리오에서 무엇이 실패했는지를 짚어보는 것들이 되게 도움이 돼요. 좀 잔인하게.

 

자기가 자기 몸을 마취하지 않고 해부하듯이

매스를 손에 쥐고 이렇게 찢어보는 거죠. 표현이 너무 끔찍한데 

피와 살과 뼈까지 들여다보는 거죠. 쉽지 않은 일인데

 

거기서 도달한 결론이, 시나리오 개론서나 입문서에 나온 문구들과, 

또는 어떤 챕터의 제목과 똑같더라도

그거는 진정 그 순간에 자기가 얻게 된 진짜 팁이자 지식이자 그거인 것 같아요.

 

그냥 그런 류의 이론서들에, 이론서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거기에 보면 뭐가 막 나오잖아요. 

1/3에 어떻게 해야 된다는 둥 안타고니스트가 어떻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걸 그냥 책에서 선행적으로 학습한 것과

자기가 써봤는데 알고 보니 그게 이거였었고,

그때 자기가 했었던 선택이 잘못된 거였다는 걸 깨닫게 되면 

그게 진짜 자기 것인 것 같아요. 결국 써보는 방법 밖에 없다.

(18:55-2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