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기: 문득 전종환을 보다가 이근후 선생님의 책을 알게 되었다. 전종환 씨가 소개해준 책은 전자 도서관에 없어서, 이근후 선생님의 다른 책을 찾아 읽었다. 며칠 전 블로거 윤 지님의 포스팅을 보고 박완서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이근후 선생님 책이 떠올랐다. 박완서 선생님이 돌아가신 날에 대해 쓴 글이.
박완서 선생과 인연을 맺은 것은 10여 년 전이다. 내가 오랫동안 봉사를 해 오던 광명보육원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시 공모전 시상을 선생이 직접 해 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유명 소설가가 주는 상을 받으면 아이들도 어깨가 으쓱해지고 스스로 자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의도였다. 선생과는 일면식도 없었지만 이 보잘 것 없고 번거롭기만 한 봉사를 흔쾌히 허락했다. 그리고 해마다 잊지 않고 참석하여 어린 예비 작가들에게 상장을 건네주었다. 한 번은 상을 받은 아이가 학교 담임교사에게 박완서 선생님에게서 직접 상을 받았다고 자랑했다가 거짓말을 한다며 꿀밤을 맞았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전하는 아이의 얼굴에 뿌듯함이 가득해 나 또한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박완서 선생의 이름값을 새삼 느낀 일화다.
첫해 시상식 날에 박완서 선생은 말했다.
"나는 평생 이런 일에 참여해 본 적이 없습니다. 무슨 모임에 나서는 것이 거북하고 내 이름을 걸고 상 주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 일은 마음이 끌립니다. 부디 이 상을 오래 주기 위해서라도 오래 살아야겠습니다."
소녀처럼 수줍은 선생의 웃음을 나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오래 살겠다고 약속했던 선생님 10년 동안 아이들에게 상을 주고 매번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오늘 세상을 떠났다.[...]
타인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죽음의 당사자가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날 함께 모인 세 명은 고인의 가족도 아니고 고인과 각별한 친분을 나눈 적도 없다. 게다가 그날 처음으로 만났기에 서로에게도 낯선 사람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갑자기 선생의 부음을 듣고 장례식장도 아닌 이 작은 공간에서 선생과 연결된 사소한 기억을 찾아내며 죽음을 슬퍼하는 나름대로의 의식을 치렀다. 이것이야말로 선생이 참 좋은 삶을 사셨다는 반증이 아닐는지. [...]
선생의 수줍고 푸근한 얼굴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어떤 사람을 생각할 때 따뜻함을 느낀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좋은 영향력을 준 선생이기에 저절로 차분한 애도가 마음속에 떠올랐는지 모른다. 따뜻한 배웅이다. 우리에게 영혼이 있어서 이승의 삶을 마치고 더 큰 세계로 나아가려 할 때 그런 따뜻한 배웅자가 많다면 얼마나 든든하겠는가.(96%)
-> 이 구절을 읽고 지난 6월에 돌아가신 이모할머니 생각이 났다. '타인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죽음의 당사자가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이 슬펐던 것은 그만큼 할머니가 좋은 삶을 살셨다는 의미다. 이모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아빠와 통화를 하며, 이모할머니가 내게 베풀어주신 것이 많다고 말하며 그것은 아마도 이모할머니가 아빠를 참 예뻐하셨기 때문일 것이라 말했다. 아빠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아빠가 말씀하시길 이모할머니가 뒤늦게 대학에 입학하셨을 때 할머니, 즉 아빠의 어머니가 도움을 주셨다고 했다. 그때 고마웠던 마음을 이모할머니는 우리에게 베푸셨을 거라고. 그래서 나는 우리 친할머니께도 감사했다.
나의 오래된 꿈 가운데 하나는 스님들의 선방처럼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방을 가져보는 것이다. 선방은 스님들이 가부좌를 하고 앉아 명상하는 곳이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오직 '나'를 붙들고 앉아 있을 뿐이다. 간혹 스님들의 방에 초대되어 차를 마실 일이 있으면 나는 언제나 그 텅 빈 방, 그리고 그곳을 꽉 채운 고요와 정갈함에 깊은 감동을 느낀다.(97%)
"그동안 해 놓은 일이 없다."
입버릇처럼 말하던 친구가 있다. [...] 또 자식들도 잘 키워 사회에서 성실하게 제 몫의 일을 하고 있으니 누가 봐도 성공한 삶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무언가 부족한 인생을 살았다며 허무감에 젖어 있더니 한동안 우울증에 빠져 지냈다.
또 한 친구는 앞서 말한 친구와 다르게 그간의 삶을 정리하고 자세한 기록으로 남기려고 애를 썼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다. 사후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 사람은 잘 살았구나"라는 인정을 받고 싶다고도 했다. [...]
그러나 대다수의 인간은 지극히 평범하게 살다 갈 뿐이다. 인류사의 거대한 강물에서는 바늘로 찍은 한 점만큼의 흔적도 없다. [...]
삶은 내가 남기는 것이 아니다. 뒷사람에 의해 나의 모든 행적이 들추어져 남을 만한 것은 남게 된다. 훗날 누군가에 의해 들추어졌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삶이기를 바라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부끄럽지 않은 삶이란 무엇인가.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부응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여러 해가 지난 뒤, 나는 어머니가 다니시던 절에서 어머니 제사를 올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머니가 평생 봉사를 많이 하기도 하셨지만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렴풋이 어머니의 인품을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자식도 친척도 아닌 사람들이 뜻을 모아 기일을 챙길 정도로 어머니의 덕망은 깊었던 것이다.
내 삶은 나에 의해 남겨지지 않는다. 내 삶을 기억하고 추적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에 의해 남겨질 것이며, 운이 좋다면 시간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그러니 죽음이 내일 닥치더라도 오늘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살다 간 흔적이 남지 않는다고 허망한 것은 아니다. 자연계의 모든 존재가 살다 간 흔적을 남긴다면 세상은 뒤죽박죽일 것이다. 히말라야의 거대한 산맥을 바라보며 나는 인간이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를 느꼈다. 그러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하찮은 존재라는 사실조차 잊고 주어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 감동스럽다. 사람은 하찮으면서도, 히말라야보다 더 큰 존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듯이 잘 쓰인 인생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라고 했다. 행복한 잠이란 마음에 불안이 없다는 말이다. 무엇을 남길까, 내가 죽은 뒤에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신경 쓰지 말라. 그런 겉치레 모습에 매달려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마지막일지도 모를 오늘을 귀하게 쓰자. 그래야 내일이라도 두 다리 쭉 뻗고 죽을 수 있다.(99%)
책의 구조가 멋지다. 모든 나이의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인생을 100세로 설정한 네팔에서처럼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25세까지, 2부는 50세까지, 3부는 75세까지, 5부는 100세까지.
1부 봄: 세상과 나를 알아가는 그대에게 - 25세까지
2부 여름: 익힌 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역할을 감내하며 오늘을 사는 그대에게 - 50세까지
3부 가을: 다시 온전한 나를 찾고자 하는 그대에게 - 75세까지
4부 겨울: 행복하게 떠날 준비를 하는 그대에게 - 100세까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작가의 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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