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7일 화요일 베를린
장영희 교수님의 책은 고등학교 때 처음 읽었다. 미사에서 연주 봉사를 함께 했던 오르간 연주자 아주머니께서 '문학의 숲을 거닐다' 책을 선물해주셨다. 이후로 장영희 교수님의 책이 나올 때마다 사서 읽었다. 솔직하고 유머스러운 글 속에서 문득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나게 될 때 눈물이 글썽했다. 아빠도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2009년에 장영희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 서강대로 교수님 수업을 들으러 가지 않았나' 후회했다. 가까운 곳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꼭 한 번 교수님 수업을 듣고 싶었고, 책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베를린에서 다시 장영희 교수님 책을 읽었다. 처음 책을 읽고 난 후 15년이 지났다. 그동안 나도 많이 성장했나 보다. 글 속에 묻어나는 다채로운 빛깔을 더욱더 잘 느낄 수 있었다.
베를린에 오니 종종 15년 전의 내가 떠오른다.
친구의 블로그에 단 나의 댓글:
"어제 지하철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 지하철 문 앞 유리에 비친 제 모습을 봤어요. 지하철 탄 지 딱 15년 되었거든요. 예고를 들어가면서 서울에 살게 되면서 처음으로 지하철로 통학했어요.
베를린 지하철 문 까만 유리에 15년 전 고등학생 얼굴이 보였어요. 크게 바뀐 것은 없더라고요.
15년 전에는 내가 독일에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요? 15년 전 고1의 나는, 31세의 나를 상상해 볼 수 없었어요. 30이라는 숫자는 정말 많은 나이라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15년이라는 시간은 지났고 나는 31세가 되어있었죠.
15년 후의 나를 떠올렸어요. 40대 중반이 되어있을 나 :-)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어요."
작은 대학 도시인 괴팅엔에 살다가 베를린으로 오니, 서울에 처음 살았던 고등학생 때가 떠오른다.
15년 후 40대 중반이 되어 다시 장영희 교수님 책을 읽으면, 더 많은 걸 이해할 수 있겠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다시 시작하기> 중에서:
하지만 오래전 나는 정말 뼈아프게 '다시 시작하기'의 교훈을 배웠고, 그 경험은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기억 중 하나이다.
1984년 여름 뉴욕 주의 주도 올버니에 있는 뉴욕 주립 대학교에서 6년째 유학 생활을 하던 나는 학위 논문을 거의 마무리 짓고 심사만 남겨 놓은 채 행복한 귀국을 꿈꾸고 있었다. [...]
논문 심사를 얼마 안 남기고, 당시 LA에 살던 언니가 아프다는 소식이 왔다. 나는 어차피 곧 떠날 것이므로 차제에 기숙사 방을 비우고 LA로 가서 언니와 함께 있기로 했다.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해 그동안 책상 위에 높이 쌓였던 논문 초고들을 과감하게 다 버리고(당시만 해도 워드 프로세서가 시작 단계였고 기계치인 나는 모든 작업을 전동 타자기로 해결했다), 내 전 재산 - 옷 몇 벌, 책 몇십 권 그리고 논문 최종본 - 을 모조리 트렁크 하나에 집어넣았다. LA에서 마지막 원고 수정을 한 후 논문 심사 날짜에 맞춰 돌아올 셈이었다. [...]
그 친구 집에 들어가서 10분 쯤 지났을까, 막 커피를 마시려는데 열 살짜리 친구 딸이 들어와 도둑이 차 트렁크를 열고 내 짐꾸러미를 몽땅 훔쳐 달아났다고 전했다.
내 논문, 내 논문∙∙∙∙∙∙.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어떻게 올버니로 돌아왔는지 기억이 없다. 친구가 함께 와준다는 것을 뿌리치고 깜깜한 밤에 기차를 타고 어찌어찌 기숙사로 돌아와서 방문을 잠갔다. 전화도 받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꼬박 사흘 밤낮을 지냈다. [...] 배고픔을 느낄 기력도 없이 그냥 넋이 나간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
닷새째쯤 되는 날 아침, 눈을 뜨니 커튼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스며들어 어두침침한 벽에 가느다란 선을 긋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호기심이 일었다. 잃어버린 논문과는 상관없이 사람이 닷새 동안 먹지 않고 누워 있으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 지금의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어지러움을 참고 일어나 침대 발치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헝클어진 머리에 창백한 유령 같은 모습이 나타났다. 가만히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내 속 깊숙이에서 어떤 목소리가 속삭이는 것이었다.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기껏해야 논문인데 뭐. 그래, 살아 있잖아∙∙∙∙∙∙. 논문 따위쯤이야.'
선책의 여지가 없어져 본능적으로 자기 방어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정체절명의 막다른 골목에서 선 필사적 몸부림이 아니었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일어서는 순명의 느낌, 아니, 예고 없는 순간에 절망이 왔듯이 예고 없이 찾아와서 다시 속삭여 주는 희망의 목소리였다. [...] 우선 샤워를 하고 헤이커스 티셔츠로 갈아입은 다음 캠퍼스 스낵바에 가서 닭튀김을 한 열 조각쯤, 거의 토할 지경까지 먹었다. [...]
미리 연락드려 사정을 알고 있었던 거버 박사는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아 주셨다.
"오늘쯤 올 줄 알았다. 아닌 게 아니라 웨스트부룩 박사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영희는 그대로 주저 않을 사람이 아니라고, 곧 올 거라고 얘기했었지. 넌 뭐든 극복하는 사람이니(You're a survivor). 이제 경험이 많으니까 더 좋은 논문을 쓸 수 있을 거야."
거버 박사는 올버니로 오는 기차 안에서 울다가 잃어버린 콘택트렌즈를 새로 사라고 100달러를 주셨다.
거버 박사의 주선으로 과에서는 다시 강사 자리를 주었고, 도서관에서는 잃어버린 몇십 권의 책 반납을 면제해 주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 나는 다시 논문을 끝냈다.
15년이 흐른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가슴이 내려앉을 정도로 힘든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 경험을 통해서 나는 절망과 희망은 늘 가까이에 있다는 것, 넘어져서 주저앉기보다는 차라리 일어나 걷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배웠다.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6-8%)
나도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었을 때가 있었다. 블로그에 열심히 글쓰던 2019년 2월에 그랬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던 어느 날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부 그 까짓게 뭐라고. 이렇게 살아 있는데. 일상을 영위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다고 내 자신을 다독여주었다.
큰 깨달음이었다.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내가 답답할 때도 있고 나의 능력이 부족해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나인 걸. 이런 내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노력하는데 어떻게 더 다그칠 수 있겠는가.
오늘도 나를 다독이면서 보낸다.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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