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카드 ::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김새별 -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배운 삶의 의미

2019. 5. 6. 05:52일상 Alltag/시와 글과 영화와 책 Bücher

2019년 5월 5일 어린이날 저녁 베를린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김새별

계기: 작년 혹은 재작년에 괴팅엔 대학 전자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이다. 다운로드하여 두고 읽지 못했다. 며칠 전 우연히 예전 대출했던 목록을 보다가 발견했다.

감상: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말해주는 따뜻한 책이지만, 죽음 후의 장면(고독사, 자살)을 써 내려간 부분에서는 가슴이 먹먹했다. 처음부터 읽다가 나중에는 목록을 보고 선별해가며 읽어야 했다. 너무 무거운 내용은 읽지 못했다. 작가는 직업 특성상 다른 사람들이 많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경험하며 느낀 것이 많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책으로 써주어 고마웠다.

 

 


이 바보 같은 젊은이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진정한 효도라는 것을 몰랐다. 그는 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지만 그것이 그가 수재여서도 의사가 될 사람이어서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부모님에게 그가 소중한 까닭은 다만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눈물겨운 존재가 자식이라는 것을 그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10%)


 

 

 


수일간 비어 있던 터라 온기가 없는 반지하 집이었다. 그런데 들어서는 순간 무언가 밝고 따사로운 느낌이 들었다. 방은 깨끗하고 짐은 단출했다. 가전제품도 세탁기와 냉장고가 전부였다. 그러나 책장에는 성경책과 종교 서적들이 꽤 빼곡했고, 책상 대용인 듯한 밥상 위에도 공책, 돋보기안경이 놓여있었다. 서랍장 위에는 종이로 곱게 접은 컵받침이며 장미, 백조 같은 작품들이 단정하게 진열대 있었다.

폐지를 수집하시던 할머니였다. 녹록치 않은 일상 속에서도 틈틈이 성경을 필사하고 복지관에 다니며 종이접기를 배우신 모양이었다. 돋보기안경에 의지해 한 글자 한 글자 성경을 옮겨 쓰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졌다. 종이가 컵밭침이 되고 장미가 되고 백조가 될 때마다 스스로 놀랍고 기뼈서 잘 보이는 곳에 나란히 줄 세워놓는 모습도 마치 본 것처럼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음에 따뜻한 물결이 일었다.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오늘을 열심히 사는 사람을 만났을 때 받게 되는 감동 같은 거였다. [...] 

고인은 지병이 악화되어 병원을 찾았고, 입원해서 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셨다. 복지관에서 그렇게 들었다. 우리 회사는 복지관과 연계되어 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이 죽음을 맞이하면 유품을 정리해 드리기 위해서다. 그날도 복지관에서 연락을 받고 온 터였다.

가구가 다 나가고 전자제품을 옮길 때쯤이었다. 집주인 할머니와 또 다른 할머니가 오셨다.

"냉장고랑 세탁기는 밖에 놔두고 가면 안 될까?"

"그럼요. 그냥 밖에 놓기만 하면 되나요?"

"응. 이 할머니가 죽은 노인네 친군데, 병원에 가기 전에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이 할머니한테 세탁기를 가져가라고 했어. 냉장고는 폐지 할아버지 주라고 했는데." [...]

할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예상했던 것일까.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저 '나 죽으면 쓸 만한 물건은 가져가라'가 아니라 세탁기는 친구, 냉장고는 폐지 할아버지, 소형 가전이랑 겨울옷은 옆집 할머니, 구체적으로 일러 놓고 가셨다.

할머니는 그렇게 내일을 준비하셨다. 연락 없는 자식들이며 풍족하지 못한 생활에 낙심하고 지나간 날들을 후회하는 대신 새벽같이 일어나 폐지를 줍고 저녁이면 성경을 필사하고 가끔 복지관에 나가 종이 접기를 배우면서 오늘을 열심히 살고 미련 없는 내일을 준비했다.

문득 부끄러워졌다. 내일을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오늘을 살지 못하고 어제를 후회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날 멋진 할머니를 만났다.  (38-39%)


-> 글을 읽으며 할머니 방과 성경을 쓰는 모습이 그려졌다. 나도 할머니처럼 오늘을 열심히 살고 미련 없는 내일을 준비하고 싶다. 나의 방은 할머니의 방처럼 밝고 따사로운 느낌이 들까? 더 간소하고 살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겨야겠다.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이도록 주거 공간을 방치했다는 것은 삶을 방치했다는 것이다. 쓰레기가 생기면 내다버리고,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고, 먼지 앉은 가구를 닦고, 바닥을 걸레질하는 것은 하찮은 일이다. 그러나 이 하찮은 일들이 우리의 일상을 지탱해준다. 삶의 의지가 사라졌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놓아버리는 것이 이런 일들이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청소를 결심했다는 것은 다시 살아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46%)


-> 하찮은 일. 어제와 오늘 밀린 빨래를 했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빨래할 겨를이 없었다. 오늘 빨래를 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토요일에 빨래를 하는 건 잘 지내고 있다는 의미이구나. 이번 주말에는 빨래를 했으니 잘 지내고 있구나.

지방에서 자란 나는 고등학교를 서울로 오게 되었다. 언니와 둘이 살았고 엄마는 일주일의 3-4일 정도만 서울에 머무셨다. 본가에 사는 어린 동생을 돌봐주셔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안 계시던 어느 날 빨래하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공부도 해야 하고 악기 연습을 해야 하는데...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빨래하는 시간이 아깝다고 했더니 엄마가 하신 말씀 "연습이랑 공부보다 더 중요한 일이야. 빨래하고 해." 시간이 흘러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하찮아 보이는 빨래가 나의 일상을 지탱해준다는 것을. 토요일에 빨래를 하면 일주일 입을 옷이 생기고,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 빨래하고 책상 치우고 방 청소하는 게 나를 돌보는 일이라는 걸.

 

 

 


그리고 생각했다. 세상의 기준에 나를 맞출 것이 아니라 나에 맞춰 세상을 바꿔나가면 되지 않겠느냐고. 내 인생의 운전대를 쥔 사람은 나이고, 천천히 다른 방향으로 간다고 해서 무엇이 문제겠냐고. 오히려 남과 다른 길을 가는 재미를 소소하게 느끼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71%)


 

 

 


정말로 남는 것은 집이 아니고 학벌이 아니고 돈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기억이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내가 죽은 뒤에도 세상 한구석을 따뜻하게 덥혀줄 것이다. (79%)

<부록> 유품정리사가 알려주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7 계명

1. 삶의 질서를 위해 정리를 습관화하세요.

[...]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것은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고, 먼지 않은 가구를 닦고, 바닥을 걸레질하는 것처럼 사소한 일들에서 시작됩니다. [...] 쓸모없는 물건은 과감히 버리세요.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사는 공간을 단순하고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2. 가족들에게 병을 숨기지 마세요.

[...] 가족들에게 병을 숨기는 일은 짐 대신 죄책감을 얹어주는 일입니다. 병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은 잠깐의 짐이 되지만, 병이 있다는 사실을 감추면 자식에게 평생의 죄책감을 안고 살게 할 수 있음을 기억하세요. 때론 자신의 짐을 다른 가족들과 나눠 질 줄 아는 현명함도 필요합니다. (97-98%)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가, "현장에 가면 무섭지 않아요?"이다. 처음에야 힘들었지만, 자주 접하다 보니 지금은 무섭지 않다. 다만 마음이 힘든 날이 많다. 아무래도 슬픔 일을 겪은 고인을 자주 접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노력했던 흔적 때문에 가슴 아픈 현장도 있다. 집 안에는 산에서 채취한 상황버섯, 영지버섯, 각종 약초가 가득했고 민간요법이며 암을 극복한 이들의 수기가 담긴 책이 여러 권이었다. 그러나 그는 암과 싸우다가 결국 고독하게 죽어갔다.

이런 고인을 만난 날은 더 마음이 힘들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로 술은 마시지 않는다. 외롭고 힘들게 살다 돌아가신 분들의 유품을 정리하다 보면 제일 많이 나오는 것이 빈 술병이다. 술병들을 볼 때마다 술로 인생을 허비하고 스스로를 파괴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대신 가족들 생각을 많이 한다. 어서 집으로 가 딸의 얼굴을 보고 싶고 온 힘을 다해 꼭 껴안아주고 싶다.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사랑하며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96%)


 

 

 


직업 특성상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걸 많이 보았고, 경험하고 느낀 것이 많기에 아는 만큼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랑 때문에, 취업 때문에, 생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도록,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자 일자리 창출을 돕는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신청을 하게 되었다. 그 결실로 삼 년 전부터 법무부와 연계하여 범죄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돕고 있다. (97%)


 

 

 


내 작은 관심이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수 있는 큰 희망이 될 수 있다. 포기하려던 삶을 다시 부여잡고 시작할 수 있는 동아줄이 될 수 있다. 단 한 명이라도 이 책을 읽고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기를,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일깨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97%)


 

 

 


"오늘 뭐 하셨어요? 식사는 하셨어요?"

일을 마치고 나면 나는 자주 아버지께 전화를 한다. 특별한 내용 없는 짧은 통화지만 아버지 목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놓이고 아버지 역시 아들의 전화를 고마워하신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화 한 통 하는 일, 어렵지 않다. 전화가 번거롭다면 문자 메시지도 있다.

우리의 짧은 안부 인사, 따뜻한 말 한마디가 소중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에게 정말로 남는 것은 누군가를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 오직 그것 하나뿐이다.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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