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에게 점심을 뺏겼다

2019. 5. 5. 01:32일상 Alltag/하루하루가 모여 heute

2019년 5월 4일 토요일 오후

 

창가에 보면 죽이 보인다. '죽' 단어도 써있다.

누룽지에 된장국 블럭을 넣고 참치를 올려 그럴싸한 사랑니 발치 환자식을 만들었다. 뜨거운 음식은 잇몸에 좋지 않으니 죽을 식히려고 창가에 두었다. 침대에 앉아 블로그를 쓰다가 문득 창가를 보는데 엄청 큰 검은 물체가 있었다. 깜짝 놀라 소리지르자 까마귀도 놀라 뒷날갯짓을 하며 날아간다.

 

너무 놀랐다. 아주 큰 까마귀였다. 내 책가방만큼 컸다. 까마귀가 날아가고 나 니

'까마귀도 나를 보고 놀랐겠구나. 내가 까마귀보다 훨씬 크니까!'

 

혹시 내가 검고 큰 까마귀의 외모에 놀란 게 아닌 가 싶었다. 어제는 참새에게 점심으로 먹던 식빵도 나누어 주던 나인데. 검은 외모로 판단한 것은 아닌지. 작은 참새도, 작은 앵무새도, 큰 까마귀도 다 같은 생명체가 아닌가! (나는 작은 앵무새를 키워본 적이 있어 새를 좋아한다.) 그저께는 토끼 옆에 있는 까마귀 동영상도 찍었으면서...

 

까마귀가 먹은 죽을 다시 먹을 수는 없으니 그냥 두기로 했다. 기다리니 다시 까마귀가 왔다.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흠칫 놀라 가버린다. 잠시후에 다시 왔더라. 이번에는 머물러서 먹지는 않고 참치만 먹고 가버렸다.

 

 

 

 

 

그렇게 나는 내 점심을 까마귀에게 뺏겨 버렸고... 죽을 다시 만들었다.

 

창가에 더 이상 죽이 없는데도 까마귀가 내 창가에 왔다. 또 놀랐다. 이제 마음 놓고 창문을 열어 놓을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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