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1일 수요일밤 베를린
베를린 날씨가 쌀쌀해졌다. 가을이 지나가 버리고 겨울이 온 것 같다. 특히 어제저녁 산책길이 꽤 추웠다.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일 년 내내 산책할 때마다 듣는 곡을 소개해본다. 여름에 들어도 좋고 겨울에 들어도 좋다. 독일에서 들어도 좋고 한국에서 들어도 좋다. 베란다 프로젝트의 Hiking(산행)이라는 곡이다.
이 노래는 작년에 썸을 타던 P가 소개해주었다. 가요를 잘 알던 그는 나에게 여러 노래를 소개해주었다. 내가 김동률 음악을 좋아한다니까 그는 ‚베란다 프로젝트’ 앨범을 알려주었다. 앨범 속 모든 곡이 좋았다. 매일 아침 부산의 작은 집을 청소하며 노래를 들었다.
작년에 7개월 동안 한국에 있었다. 3년 만의 한국행이었다. 학사 논문 쓰고, 버스 사고 후 치료받고, 코로나 시기에 석사를 시작하느라 한국에 오래 가지 못했었다. 엄마랑 통화하다가 알게 되었다. 나는 한국에 충분히 갈 수 있었지만, 학업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에 한국 갈 생각을 하지 못했음을. 잘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하지만 내게는 쉼이 필요했다. 엄마와 통화 후 한국에 가기로 했다. 마침 비행기 표도 쌌고 학교도 온라인 수업이라 바로 짐을 싸서 갈 수 있었다.
2주 동안 부산의 작은 집에서 자가격리를 했다. 부산은 언니네가 사는 곳이다. 언니와 형부에게는 아들이 둘 있다. 우리 부모님은 손자들을 봐주러 주중에 부산에 가는데, 그때 부모님은 부산의 작은 집에 머무신다. 나는 인천 공항에 도착해 KTX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부산역에서 PCR 테스트를 한 후 택시를 타고 부산집에 도착했다. 늦은 밤이었다. 아빠는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멀찍이 서서 아빠와 대화를 나누었다. 아빠는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셨다. 아빠는 나와 함께 부산집에 들어가실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자가격리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부산집이 처음이었다. 아빠는 멀찍이 서서 부산집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주셨다. 나는 혼자 10층으로 올라갔고, 아빠는 아파트 10층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서 떠나셨다.
부산의 작은 집은 단출했다. 엄마 아빠가 주중에 주무시기만 하는 곳이라 살림살이도 별로 없었다. 소파도 없고 TV도 없었다. 침대도 없고 책상도 없었다. 작은 식탁과 메트리스만 있었다. 스님 선방에 온 것 같았다. 아빠는 집을 깨끗하게 청소해두셨다. 깨끗한 화장실과 현관, 거실에서 아빠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냉장고에는 엄마의 사랑이 있었다. 여러 가지 나물과 과일이 있었다. 작은 방에는 2주 동안 마실 물이 충분히 있었다.
짐을 풀고 썸남과 통화했다. 나는 부산집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느낀다고 말했다. 현관, 화장실, 거실, 냉장고에서 느끼는 부모님을 사랑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다 울컥했다. 썸남 탓도 있었다. 썸남은 자신도 부모님께 정말 감사하다며, 자신이 아이를 낳는다면 부모님이 하셨듯 아이를 사랑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썸남이 대화 분위기를 감사함와 애뜻함으로 몰고 갔다.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감상적으로 변해버렸다. 그렇게 나는 눈물을 몇 방울, 아니 좀 많이 흘렸다.
2주 동안 자가격리를 하며 심심한 나날을 보내는 나에게 썸남은 여러 노래를 소개해주었다. 그중 지금도 즐겨 듣는 노래가 베란다 프로젝트 앨범이다. ‚산행’은 매일 아침 청소를 하며 들었다. 나는 독일에 있을 때부터 매일 아침 바닥을 쓰는 아침 루틴을 했다. 머리가 길어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아침에 바닥을 쓸었다. 밀대에 부직포를 붙이고 바닥을 쓸었다. 청소 후에는 음악을 들으며 아침으로 먹을 과일을 준비했다.
자가격리가 끝나고 부모님 집으로 갔다. 뒷산 등산하며 ‚산행’을 들었다. 나는 매일 아침 엄마 등산 바지와 엄마 등산 티셔츠, 엄마 등산 조끼와 엄마 등산 모자, 엄마 등산용 마스크, 엄마 등산화를 신고 뒷산에 올랐다. 알록달록한 패션이었다. 마스크에는 꽃무늬가 가득했다. 나는 완벽하게 60대 여성으로 보였다. 어느 날 엄마는 내 옷이 웃겼는지 ‚그렇게 입고 가게?‘ 물으셨다. 나는 ‚응! 뭐 등산 가는데 예쁘게 하고 갈 필요 있나?’ 답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가리는데 어떤 옷을 입든 무슨 상관이랴! 아무 옷이나 막 걸친 알록달록한 등산 패션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그 옷을 입고 뒷산으로 향하며 베란다 프로젝트의 ‚산행‘을 들었다.
썸남과는 헤어졌다. 하지만 썸남이 알려준 노래는 남았다. 노래는 나와 여러 순간을 함께 했고 내게 여러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오늘 나는 노래를 들으며 한국으로 향하던 비행기와 부산의 냄새, 부모님의 사랑, 알록달록한 등산 패션의 자유로움을 떠올린다.
'일상 Alltag > 하루하루가 모여 heu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독주니어포럼 1 - 늦으면 뭐 어때! (0) | 2022.10.27 |
---|---|
느린 사람 - 나답게 살기 (4) | 2022.10.20 |
묘하게 편안한 구석이 있다 (feat. 브람스 자장가) (2) | 2022.09.08 |
나로 돌아가기 (feat. 허회경 - 그렇게 살아가는 것) (0) | 2022.09.07 |
글쓰기 근육 (2) | 2022.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