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9일 저녁 베를린
나는 느리다. 무엇을 결정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새로운 것을 익히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느리다고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오래 고심하여 내린 결정은 후회가 적다. 느리게 배우지만 시간과 정성을 들인 덕분에 진짜 내 것이 된다. 빠른 성장이 미덕인 사회에서 나는 내 느린 속도를 부끄럽게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느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이게 나니까. 있는 그대로의 나도 참 괜찮으니까.
느리게 가면 좋은 점이 많다. 쉬엄쉬엄 가다 보면 꾸준히 갈 수 있다. 하늘을 보고 꽃을 보고 귀여운 아기 참새도 보며 걸으니 웃을 일이 많다. 결정을 내릴 때 충분히 생각하니 내가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내가 느리다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내 사정을 설명하면 상대는 이해한다. 오늘도 그랬다. 곧 참여하는 포럼에서 갑작스럽게 변경된 것이 있었다. 나는 담당자에게 오늘 내 일정을 설명하고 조금 늦게 답을 하겠다고 말했다. 담당자는 괜찮다고 답했다.
내 느림을 이해하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관계 맺은 사람들이 나를 잘 이해해주었다. 아빠가 그랬다. 성격이 급한 엄마도 이제는 나를 잘 기다려주신다. 아, 물론 엄마에게는 매번 말씀을 드려야한다.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첫 남자친구도 항상 나를 기다려주었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도 나를 기다려 준다. 악기 선생님과 교수님도 나를 기다려주셨다.
느린 나에게 무엇인가 빨리 결정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이 내 인생 계획을 다 세워두고 왜 못 따라오느냐 했던 사람도 있었다. 이런 사람과는 오래 가지 못했다.
나는 느리게 살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느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답게 살고 싶다. 요즘 산책하며 느리게 살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어디에 살고, 어떻게 일상을 꾸려나갈지 생각한다. 10년 후에 나는 지금보다 느린 삶을 살고 있겠지. 10년 후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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