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하게 편안한 구석이 있다 (feat. 브람스 자장가)

2022. 9. 8. 02:57일상 Alltag/하루하루가 모여 heute

2022년 9월 7일 수요일 저녁 베를린

 

 브람스 자장가 Brahms - Wiegenlied

 

늦은 오후에 방을 정리하고 빨래를 분류하고 바닥을 쓸고 닦았다. 점심을 먹은 후 쌓인 설거짓거리를 하고 나니 잠이 솔솔 왔다.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푹 자고 눈을 떴다. 밴드 앱 ‚플레이리스트 만들기‘에 올라온 글과 음악을 보았다. 오늘 무슨 노래를 들을까 핸드폰을 살펴보았다. 저장해둔 노래와 연주곡을 차례로 보는데 전 남자친구가 보낸 음성녹음도 있었다. 하나씩 지웠다. 다 지우고 나니 브람스 자장가가 생각났다. 자장가를 들으니 포근한 기분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었다. 큰 뭉게구름이 보였다. 와!

 

뭉게구름

 

 

세탁기를 확인하러 갔다. 옆방 사는 애가 세탁기에 넣어둔 옷을 세탁기 위 올려두고 나는 빨래를 준비했 다. 옆방 애는 상상 초월로 더럽다. 그 아이가 오후에 일어나 자신의 방문을 열고 화장실에 가면 온 복도에 그 애 방 냄새가 난다. 냄새가 고약하다.

 

어제 자원봉사자 교육을 함께 받은 H 선생님을 뵈었다. 내가 기숙사에서 다섯 명의 아이들과 함께 산다고 하니 선생님은 신기해하셨다. 아마도 선생님은 결혼하신 지 오래되어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게 놀라운 일이었나보다. H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학생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죠!“ 맞다. 학생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다. 귀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외향형 세 명과 내향형 세 명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셰어하우스 기숙사. 우리가 사는 기숙사 건물 5 층은 마치 하나의 커다란 배 같다. 

 

앗! 세탁기 삐삐- 소리가 들린다. 빨래 넣고 와야겠다.

 

함께 살면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나는 금방 방문을 열고 세탁기에 가려다가 화장 실 가는 타무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나도 누군가를 놀라게 한다. 나는 주로 알렉스를 놀라게 한 다. 알렉스는 부엌에서 요리하고 있다가 내가 들어가면 깜짝 놀란다. 또 내가 부엌에 요리하고 있을 때 저녁을 준비하러 온 후안과 예측하지 못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만드는 음식은 무엇 인지, 맛있어 보인다든지, 요즘 늦잠을 자꾸 잔다든지 일상의 대화를 나눈다. 여섯 명의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이해 못 할 때도 있음), 청소 규칙을 만들어 일주일마다 기숙사 곳곳을 돌아가며 청소하고 (청소 안 하는 사람도 있음), 일상을 나누며 사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미래의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H 선생님처럼 내 가족을 만들어 20년 가까이 살던 어느 날 나는 오늘을 기억하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때가 좋았다 

참 용감했네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여섯 명이 사는 이 공간이 편안하다. 누군가와 함께 살면 의견이 맞지 않을 때 도 있고 매주 하는 청소가 귀찮을 때도 하다. 하지만 이 기숙사는 묘하게 편안한 구석이 있다. 고층에 살아서 하늘이 잘 보여 그런가? 창밖에 나무가 보여서 그런가? 내향형과 외향형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라 그런가? 지금 내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 편안해서 그런가? 브람스의 자장가를 듣고 있어서 그런가? 

 

오늘 저녁은 뭐 먹을까? 배가 그다지 고프지 않으니 조금 기다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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