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새벽 - 2022년 8월의 마지막 날, 내가 찾는 것은 이미 내 안에 있구나

2022. 8. 31. 12:51일상 Alltag/하루하루가 모여 heute

2022년 8월의 마지막 날 베를린 새벽 5시

 

 

 

새벽에 일어났다

 

오랜만에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정확히는 4시 50분이다. 화장실에 가려고 잠깐 일어난 게 아니라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일어났다. 위아래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한 후 화장실에 다녀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이 흰 벽에 남긴 수묵화를 보며 명상을 시작했다. 코로 숨을 천천히 들이마신 후 천천히 입으로 내뱉었다. 요가를 하며 찌뿌둥한 어깨를 폈다. 

 

하루만 지나면 9월이다. 가을이 왔다. 지난주 30도까지 올라갔던 기온은 이제 20도로 내려왔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가을이 왔음을 알려준다. 8월의 마지막 날이니 8월을 복기해보기로 한다.

 

 

 

 

8월: 쉼과 하루 루틴

8월 목표는 쉼과 하루 루틴 만들기였다. 1년 넘게 해오던 아침 루틴 모임을 8월 한 달간 쉬었다. 재정비의 시간이 필요했다. 8월 한 달 동안 푹 잤다. 방학이 시작된 덕분에 늦잠을 잘 수 있었다. 덕분에 8월 내내 컨디션이 좋았다. 이렇게 잘 자본 게 얼마만인가! 일어나는 때가 늦어져서 아침 8시, 10시, 심지어는 정오가 되어서야 잠이 깨는 경우도 있었다. 방학이니 누려보는 호사였다.

 

9월에는 다시 새벽에 일어나고 싶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이른 새벽에 혼자 깨어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을 참 좋아하기 때문이다. '바로 될까? 그동안 아침에 푹 잤는데.'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나는 오늘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또 다른 8월 목표는 하루 루틴을 만들기였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아침 루틴은 있었는데 하루 루틴이 없었다. 해야 할 일은 닥치면 했다. 8월에는 매일 지킬 수 있는 작은 목표를 세워보았다. 오전과 오후를 나누어 운동, 글쓰기, 산책, 공부 등 작은 목표를 세웠다. 하루를 모두 채워 쓰는 큰 목표가 아니라 딱 하나만 지키는 작은 목표를 새웠다. 그리고 작은 목표를 이룬 나를 격려했다. 다시 하루 루틴으로 돌아오기 위한 방법이었다. 8월 한 달 동안 나는 작은 목표를 잘 지켰다.

 

나는 목표와 계획 세우기를 좋아한다. 계획을 세우고 지키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계획을 지키지 못했을 때 실망도 크다. 가까운 사람들과 대화와 글을 주고받으며 나의 '성실'의 기준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높은 '성실'의 기준을 가지고 있고, 내가 그 기준에 못 미칠 때 나에게 실망한다. 이제는 내 기준이 너무 높은 것을 알았으니 작은 목표를 세워보려 한다. 작은 목표를 지키면 나에게 무한한 격려를 해주기로 했다. 

 

 

 

9월 목표는 비우기

9월 목표를 세웠다. 비우기! 삶에서 불필요한 것을 하나 씩 비우기로 했다. 구체적인 실천 방법도 세웠다. 저녁 9시 오디오북 듣기, 요가와 명상, 하루 하나씩 비우기. 

 

1. 저녁 9시 오디오북 듣기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위한 준비다. 저녁 9시에 오디오북을 들으며 '이제는 잘 시간이야'라고 내게 말해주는 것이다. 9시 이후 시간을 비워두면 자연스레 일찍 잘 테니까. 핸드폰은 책가방에 넣어두기로 한다. 9시 취침을 목표로 세우지 않는 것은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목표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1년 넘게 저녁 9시 취침 목표를 세워보았는데 (아침 루틴 모임에서는 매달 목표를 공유한다) 지킨 날이 많지 않다. 어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어려운 목표를 세웠구나! 요즘 자정이 넘어서 잠드는 내가 저녁 9시 취침이 목표라니...

 

어려운 목표를 세우는 대신 저녁 9시면 내게 알려주기로 했다. 좋아하는 오디오북을 들으며 '이제 잘 시간이야'라고. 오디오북을 듣고 다른 일을 해도 괜찮다. 일단 알려주는 것이다. 또 새벽 시간을 활용하되 잠을 충분히 못 잔 날은 낮잠을 자기로 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일찍 자야 한다는 부담도 적고, 계획을 못 지킬 일도 적다. 작은 목표를 이루는 날이 많겠지. 그럼 나는 목표를 이루어 기쁠 것이고!

 

이렇게 생각하고 잠드니 오늘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물 한 잔 마시고 명상과 요가를 한 후 아침 일기를 쓰고 있다. 신기하다.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내가 오랫동안 해온 습관이자 루틴이다. 원대한 목표를 세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원래 나는 새벽 5-6시면 눈을 떠지는 사람이다. 그동안 새벽 시간을 잘 활용해왔다. 깜깜했던 창 밖이 환해지는 것을 보며 기쁘게 하루를 시작했다. 

 

이미 내 안에 있었구나! 내가 찾는 것을 내 안에서 발견하는 경험을 종종 한다. 고요한 새벽을 맞이하며 시작하는 하루도,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하루도, 산책을 나가 즐겁게 걷는 것도, 공부하며 느끼는 배움의 기쁨도 이미 내 안에 있었다. 

 

 

 

2. 요가와 명상

9월의 또 다른 목표는 요가와 명상이다. 3년 넘게 하는 아침 루틴이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요가는 짧은 스트레칭으로, 명상은 (아침에 앉아서 하는 호흡 명상 대신) 걷기 명상과 축복 명상 등 일상 명상을 했다. 스트레칭과 일상 명상은 작은 습관이다. 아침에 요가와 명상을 하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거나 할 마음이 생기지 않거나 귀찮은 날에는 작은 습관으로 대체한다. 습관을 꾸준히 하려면 시간과 에너지가 없는 날에 대신할 수 있는 작은 습관 혹은 대체 습관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9월에는 다시 요가와 명상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가부좌를 틀어 호흡 명상을 하고, 몸을 움직여 요가를 하기로. 

 

 

 

3. 매일 하나 씩 비우기

매일 하나 씩 비우기로 했다. 어떤 물건이나 공간을 비워도 좋고 어떤 마음이나 근심을 비워도 좋다. 기부하고 싶은 책과 생활용품을 매일 하나 씩 가방에 넣기로 했다. 가방이 채워지면 옥스팜에 기부하기로. 불교적 표현으로 집착하는 무엇인가도 하나 씩 내려놓기로 했다. 법정 스님 책에 나온 '텅 빈 충만'을 느껴보기 위해서다. 비우면 다시 채울 수 있다. 마음도 공간도. 재미있는 습관이 될 것 같다. 

 

 

 

깜깜한 창밖이 환해졌다. 한 시간 동안 아침 루틴을 잘 마치고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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