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6일 토요일 저녁 7시
토요일이다. 게으르게 보내는 날이다. 얼마 만에 맞이하는 게으른 토요일인지! 매번 토요일은 게으르게 보내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여유를 갖기 어려웠다.
오늘 아침 6시 45분 즈음 일어나 허리에 좋은 30분 요가를 했다. 내방 창문과 욕실, 부엌 창문을 활짝 열어 온 집안을 환기시켰다.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바닥 청소를 했다. 책장에서 읽고 싶은 책을 잔뜩 꺼내 침대 옆 탁자에 올려두었다.
일기일회 책은 2주 전 부모님께 받은 책이다. 아껴가며 읽으려 기다린 책이다. 책이 정말 좋아서 <법정 스님 법문집 2>도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했다. 부모님이 먼저 읽으시고 나중에 나한테 보내주실 수 있도록. 책을 읽고 한숨 잤다.
책 사진을 아침 루틴 모임 채팅방에 보내며 짧은 감상을 남겼다. 어제에 이어 채팅방에서는 연애에 대한 의미있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모임 주최자 J님께 연애와 결혼에 대한 현명한 의견을 들었다.
자고 일어나 책을 읽었다. <당신이 옳다>는 친구 B가 작년 내 생일에 선물한 책이다. 책을 아무 페이지나 펼쳤다. 2장 <공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 보였다. 요즘 내가 관심있어 하던 주제였다. 내용이 정말 좋았다. 따뜻한 대화법을 배웠다. 나중에 친구와 대화할 때 이렇게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홀로 신장 투석을 받으러 가는 중1 창민이 이야기를 보며, 홀로 레슨을 갔던 중학교 3학년 내가 떠올랐다. 그 시기에 감사했던 분들도 떠올랐다. 한숨 자고 일어나 책을 선물해준 B에게 고맙다는 문자를 보냈다.
오후에는 친구들이랑 연락했다. 친구들이 모인 대화방에서 큭큭큭 웃으며 문자했다. 귀엽고 웃긴 친구들이다. 우리는 만나서 끝말잇기를 하며 논다. 관대하고 다문화적인 끝말잇기라 사람 이름, 지명, 외국어, 외래어 모두 가능하다.
늦은 오후에는 산책 겸 장을 보러 나갔다. 조금 먼 마트를 향해 걷다가 다시 돌아와 집 근처 마트 Bio Company로 향했다. 오랜만에 나와서인지 모든 게 새로웠다. 짙은 녹색 지하철역과 노란 베를린 지하철 전동차의 색이 잘 어울렸다. 은행에 들러 돈을 뽑았다. 마트에서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잔뜩 샀다. 두부와 마사지 오일도 샀다. 다른 마트에서 내가 좋아하는 바삭바삭한 감자칩을 사려고 했으나 마트 입구의 긴 줄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 과일과 야채가 가득한 배낭을 메고 집에 오는 길 마음이 든든했다. 기숙사에 도착해 복도 탁자 위에 배낭을 두고 방에 들어가 재킷을 벗었다. 알록달록 파스텔톤 예쁜 앞치마를 입고 부엌으로 가서 오늘 사 온 것을 냉장고와 선반에 정리했다. 하우스메이트 크리스티나가 친구와 함께 요리하고 있었다. 부엌을 나오며 둘에게 bis dann! 말하니 둘도 나에게 bis dann! 하며 미소를 지었다.
방에 들어와 따뜻한 이불을 덮고 한숨 잤다. 일어나니 밖이 조금 어두워졌다. 화장실에 다녀왔다. 아이보리빛 커텐을 치고 스탠드를 켰다. 혜민스님의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을 읽으며 나의 소확행을 떠올렸다.
게으른 토요일을 충실히 보냈으니 하루를 기록하고 싶어졌다. Sound Cloud 앱에서 Essie Jain 곡으로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켰다. 탁자 옆 선반으로 가 노트북을 가져왔다. 침대 위에 작은 책상을 올리고 노트북 전원을 켰다. 어제 블로그에 쓴 글을 읽으며 오타를 수정했다. '글쓰기' 버튼을 눌러 오늘 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그 글을 마친다.
한 시간 후:
글 다 쓰고 가계부도 정리했다. 기쁘다!!! 가계부 벌써 2개월을 꾸준히 쓰고 있다.
이어지는 글 - 1년 전 게으른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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