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일기 - 이해인 <엄마>

2020. 9. 22. 22:44일상 Alltag/시와 글과 영화와 책 Bücher

2020.09.22 화요일 오후 베를린 P

 

 

 

독서 카드

 

 

진정 한 인간의 삶에 어머니라는 존재가 갖는 비중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은 것과 못 받은 것의 차이가 크듯이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의 세상과 안 계실 때의 세상은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11쪽)

 

 

 

우리 작은 수녀님 참으로 감사해요. 세밀하고 찬찬한 효심을 담아 길고 한이 없는 숱한 얘기로 꽃을 피우고 축사를 마련해 분이 넘치도록 가슴을 메워 주니, 이제 나는 곧 죽는다 해도 아무런 미련 하나 없이 훨훨 날아갈 것만 같군요. (편지 하나, 해인 수녀가 유학 중에 받은 엄마의 편지: 그리운 작은 수녀님께 14-15쪽)

 

 

 

 

[...] 어쩌다 작은 수녀의 글이 신문이나 잡지에 실리면 버스 타고 구청에까지 가서 수십 장 확대 복사를 하여 친지들에게 돌리신다는 어머니께 저는 감사는커녕 오히려 못마땅하다는 표현을 해서 서운함을 안겨드렸지요. 

지난달에는 오랜만에 어머니를 모시고 춘천 외삼촌댁에 다녀왔는데, 꽃무늬 원피스에 파란 물방울무늬 스카프를 매시고 숱이 없는 머리를 가리기 위해 손녀 향이가 선물했다는 하얀 모자를 쓰기고 막내딸 로사가 미국에서 보낸 고운 반지도 끼시며 한껏 멋을 내셨지요. 그때도 저는 어머니께 "좀 수수하게 차려입으시지" 어쩌고 하면서 잔소리를 했던 게 마음에 걸립니다. 왜 딸들은 먼 데서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다가도 막상 효도할 기회가 오면 그렇지 못한 지 저 또한 늘 반성하면서도 고치질 못합니다.

(편지 둘, 기도 속에서 사시는 어머니께 18쪽)

 

 

 

 

 

봄 이야기

1.

가을에 태어나 가을에 가신 엄마

꽃피는 봄과 여름 사이 

엄마는 저를 낳으셨지요

저는 언제나 봄의 아이로

엄마께 봄을 드리고 싶어요

 

엄마가 좋아하시던 

연둣빛 돌나물도 돋았어요

분홍빛 진달래도 피었어요

하늘나라에서

봄처럼 밝고 행복하셔요.

(25쪽)

 

 

 

 

 

슬픔 중에도 축하를

2007년 9월 10일 

서울 길음동 성당

장례 미사 강론에서 

 

"할머니의 삶은

한 장의 단풍잎 같았지요

바람에 떨어졌어도

책갈피에 넣어 간직하고 싶은

단풍잎처럼 고운 삶을 사셨지요!"

하던 김 신부님의 말씀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분에게

슬픔 중에도 다 같이

축하를 드립시다!"

해서 눈물 속에서도 웃었습니다

 

그날 우리의 슬픔 속엔

빨간 단충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그것은 눈물이 스며들어 

더욱 곱디고운 사랑이었습니다, 어머니 

(29쪽)

 

 

 


책을 읽으며:

 

 

1. 

내가 편지를 드릴 때마다 부모님은 매우 매우 기뻐하신다. 최소 일 년에 한 번 어버이날에는 꼭 편지를 드리고 있다. 

 

2. 

우리 부모님도 내가 글 쓰는 걸 너무 좋아하신다. 일단 내가 무엇인가 쓴다는 것에 기뻐하신다. 엄마 아빠가 글을 잘 안 쓰시다 보니 글을 쓰는 작은 딸이 신기하나 보다. 

 

3. 

몇 년 전 유럽 여행을 오신 엄마의 겨울 패딩이 너무 화려하여 잔소리를 한 적이 있다. 엄마가 나름 고심하여 고른 새 옷이었을 텐데 그냥 멋지다고 해드릴 걸 그랬다.

 

4.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학업을 마치고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분'이라니! 표현이 정말 멋지다. 인생이라는 학교에 매일 출석하여 성실하게 삶을 산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다시금 느낀다. 

 

 

 

 

 

 

 

 

 

작년 이맘때였다. 가족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이 재미있어 기록해두면 좋겠다 싶었다. 여행 준비부터 여행 중 에피소드를 모아 책을 만들어 부모님께 선물하기로 했다. 2-3년 후 아버지 생신 날에 드리기로 계획했다.

 

2020/09/20 - 베를린에서 시작하는 순례길 - 엄마 아빠를 기록하기로 다짐했다

 

부모님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작가들이 부모님에 관해 쓴 책에 눈이 갔다. 평화방송에서 제작한 <해인글방>에서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 <엄마>를 알게 되었고 지지난주 한국문화원 도서관에서 시집을 빌렸다. 

 

책을 읽으면 엄마뿐 아니라 아빠도 자주 생각난다. 이해인 수녀님의 어머님은 따뜻하고 무한한 사랑을 주시는 분이다. 우리 부모님도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신다. 하지만 엄마는 무서운 교육자 역할을 담당하셨다. 따뜻한 역할은 아빠가 하셨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꼭 맞는 책이다. 나는 엄마 아빠 두 분의 이야기를 쓸 것이기 때문이다. 

 

책 처음에 등장하는 <해인 수녀가 유학 중에 받은 엄마의 편지> 마지막에는 수녀님 어머님의 손글씨가 있다. '엄마'라고 쓰인 손글씨를 보며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우리 엄마는 내가 어릴 적 학교에 제출할 서류(소풍 안내문, 시험지 부모님 확인 등)에 부모님 사인을 받아야 할 때 쿨하게 '엄마'라는 글씨를 쓰고 글자 밖으로 동그라미를 그려주셨다. 나는 그 사인이 멋이 없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였나? 엄마의 사인을 본 학교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자신이 지금까지 본 어떤 사인보다도 멋지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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