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8일 월요일 오후
아끼지 마세요
- 나태주
좋은 것 아끼지 마세요
옷장 속에 들어 있는 새로운 옷 예쁜 옷
잔칫날 간다고 결혼식장 간다고
아끼지 마세요
그러다 그러다가 철지나면 헌옷 되지요
마음 또한 아끼지 마세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사랑스런 마음 그리운 마음
정말로 좋은 사람 생기면 준다고
아끼지 마세요
그러다 그러다가 마음의 물기 마르면 노인이 되지요
좋은 옷 있으면 생각날 때 입고
좋은 음식 있으면 먹고 싶은 때 먹고
좋은 음악 있으면 듣고 싶은 때 들으세요
더구나 좋은 사람 있으면
마음속에 숨겨두지 말고
마음껏 좋아하고 마음껏 그리워하세요
그리하여 때로는 얼굴 붉힐 일
눈물 글썽일 일 있다한들
그게 무슨 대수겠어요!
지금도 그대 앞에 꽃이 있고
좋은 사람이 있지 않나요
그 꽃을 마음껏 좋아하고
그 사람을 마음껏 그리워하세요.
(나태주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 106쪽)
아침 10시 30분에 온라인 면담이 있었다. 이번 학기 제출한 Wissenschaftsdeutsch 포트폴리오 피드백을 듣는 시간이었다. 한 학기 동안 배운 학술적 글쓰기 내용을 요약하여 15장 내외로 제출한 보고서였다. 30분 예상했던 면담은 한 시간이 되어 끝났다.
면담이 끝나면 바로 공부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면담이 끝나자 기운이 빠졌다. 한 시간 동안 교수님과 긴장해서 대화했으니 당연한 몸의 반응이다. '공부가 안 되니 책라도 읽자' 따뜻한 침대에 누워 한국문화원에서 빌려온 귀한 한국 시집을 펼쳤다.
새 옷 아끼지 말고
사랑하는 마음 그리운 마음 아까지 말고
좋은 음식 아까지 말고
좋아하는 마음도 아끼지 말란다.
나는 오늘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이다
집에서 공부하는 날이지만 예쁜 옷을 입을 것이며
좋은 친구에게 편지를 써 볼 계획이다
그동안 편지 써야지 생각만 하고 일상에 지쳐 못 썼다
순례길에서 얻은 깨달음을 써야지
친구는 내 이야기를 항상 즐겁게 들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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