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순례길 3 - 엄마 아빠를 기록하기로 했다

2020. 9. 21. 03:06일상 Alltag/베를린 순례길 Berliner Jakobsweg

2020년 9월 19일 토요일 저녁 베를린 P

 

이슬아 작가 영상을 보다가 꼭 남기고 싶은 글이 있었다. 짧은 메모와 같은 글이지만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일이다.

 

 

 

글쓰기란 '사랑하는 대상을 불멸화' 하는 길이다.

- 롤랑 바르트 (프랑스 철학자)

 

 

 

 

이슬아 작가가 말처럼 글을 쓰다 보면 처음에는 '나'로 시작하다가 그 범위가 점점 주위 사람들로 넓혀진다. 내 경우도 그렇다. 나의 이야기에서 엄마 아빠의 이야기로, 언니와 동생, 친구들의 이야기로.

 

베를린에서 시작하는 스페인 순례길 14일 차, 사람보다 동물을 더 많이 보며 걷던 뜨거운 오후 나는 부모님 이야기를 쓸 이유를 또 한번 찾았다. 많아야 일 년에 한 번 뵙는 부모님이다. 아쉬워하는 대신 엄마 아빠의 이야기를 글로 쓰기로 했다.

 

엄마 아빠는 나의 첫 번째 독자이자 글쓰기 후원자이다. 어릴 적 어버이날마다 부모님께 편지를 드렸다. 엄마는 내 편지를 받을 때마다 기뻐하셨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했을 때도 엄마 아빠가 특히 기뻐하셨다. 엄마는 나의 초등학교 일기를 떠올리며, 나는 글 쓰는데 재능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엄마 아빠를 자주 뵙지 못해 아쉽다. 아빠와 엄마의 새로운 취미도 모르고 두 분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가까이 지켜보지 못해 안타깝다. 하지만 나는 글로 엄마 아빠와 함께하기로 했다.

 

어릴 적 나는 엄마 아빠의 관심과 시간 에너지를 가장 많이 받았다. 아빠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 매번 나의 악기 레슨을 데려다주셨다. 고등학교 입시 준비를 하며 밤 12시 넘게 연습실에서 연습할 때 나를 항상 데리러 와주신 것도 아빠였다. 그때 아빠와 대화했던 시간이 생생하다. 엄마는 가끔 과도한(?) 에너지로 나를 챙기셨다. 조금 더 열심히 하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지겨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엄마의 사랑이었다고 어른이 된 나는 생각한다.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엄마 아빠의 관심을 너무 많이 받아서 언니가 서운할 때도 있지 않았을까? 조금 미안한 감정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거 전혀 없다. 언니의 아들이 태어난 8년 전부터 엄마 아빠가 주중에 언니 아들 둘은 봐주시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엔 4일로 줄었다. 언니가 중·고등학교 때 못 받던 엄마 아빠의 관심과 시간 에너지를 지금은 넘치도록 받고 있다.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릴 적 엄마 아빠와 보냈던 많은 시간을 글로 써보기로 했다. 물리적으로는 부모님과 멀리 있지만 글에서는 가까이 있을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도 내가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분이 엄마 아빠니까. 그 글을 모아서 부모님께 선물드리기로 했다.

 

벌써 블로그에 쓴 부모님 글이 꽤 된다. 그 글을 잘 모으고 또 새로운 글을 즐겁게 써야지.

 

 

 

사람보다 동물을 더 많이 만났던 순례길 14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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