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4일 월요일
장영희 교수님 책 <살아갈 기적 살아온 기적>은 월간 샘터에 기고한 글을 모아서 만들었다고 했다. 월간 샘터가 궁금해서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다음호 주제는 '뜻밖의 위로를 주는 사물'이었다. 나에게 위로를 주는 물건이 뭘까 방을 둘러보다 수녀님이 선물해주신 가방이 보였다.
2017년 겨울, 한국에 갔을 때 두 분의 수녀님을 뵈러 수녀원에 방문했다. 한 분은 엄마의 중·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이셨던 수녀님. 또 다른 분은 엄마 담임 수녀님의 동료 수녀님이시다.
내가 독일로 오기 전, 엄마는 담임 선생님이셨던 수녀님께 독일에 아는 사람이 있는지 여쭈어 보았다. 수녀님은 같은 수녀원에 계시는 동료 수녀님의 조카가 독일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수녀님은 내게 그 분을 소개해주셨다. 그 분은 이제 내가 고모님이라 부를 만큼 나와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고모님 댁에서 독일 첫날밤을 보냈고, 덕분에 독일 생활을 잘 시작할 수 있었다.
감사인사를 전하려 수녀원에 찾아가니 동료 수녀님이 우리를 맞이해주셨다. 동료 수녀님은 처음 뵈었다. 미소가 아름답고 따뜻한 분이셨다. 고모님을 통해서 말씀을 많이 들어 잘 알고 있는 분 같았다. 고모님과 추억 이야기를 많이 했다. 고모님 음식 솜씨부터 부활절, 크리스마스 이야기 등.
성탄을 축하해주시며 예쁜 구유 선물을 주셨다. 어쩜 이렇게 예쁠까! 예전에도 수녀원에 가면 이렇게 아기자기한 선물을 받곤 했다.
엄마의 담임 선생님이셨던 수녀님도 뵈었다. 어릴 적 몇 번 뵈었지만 그때는 주로 수녀님과 부모님이 대화를 하시고 언니와 나, 동생은 소파에서 조용히 지루함을 달랬다. 성인이 되어 수녀님을 뵈니 달랐다. 굉장히 유쾌하신 분이었다. 수녀님과 통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엄마 학창 시절이 궁금했다. 엄마는 자신이 매우 착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이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여쭈어보았다. (엄마는 당신에 관한 것은 모두 긍정적으로 말씀하시기 때문에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 수녀님은 엄마가 아주 성실한 학생이었다며 칭찬을 많이 하셨다. 엄마와 수녀님과의 관계가 너무나 각별해서, 엄마 흉 좀 보려고 한 내가 머쓱해졌다.
수녀님은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리고 나에게 외국어로 공부하는 게 얼마나 힘드냐며 응원해주셨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하던 시절 전공 관련 책을 한국어로 읽고 싶었지만 한국 책을 구하기 어려웠다고 하셨다. 나에게 한국에 전공 관련 책을 찾아봐줄 수 있는 친구가 있는지 물어보셨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서 근무하셨던 수녀님은 이제 나이가 들어 작은 직책을 하나 맡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우리를 수녀원 입구 관리실로 안내하셨다.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은 관리실이 아니라 아기자기한 물건이 가득한 성물방이었다. 수녀님은 그곳에서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사장'이라는 단어를 강조하셨다. 수녀님들이 직접 만든 가방을 보여주며 엄마와 내게 토트백과 미니 크로스백을 선물해주셨다.
"와! 사장님께 받은 선물이네요! 감사합니다." 말하자 수녀님은 사장님 미소를 지으셨다.
수녀님께 받은 가방은 내가 입는 옷과 어울리지 않아 밖에 메고 나간 적은 딱 두 번 뿐이다. 괴팅엔에서 베를린으로 이사오며 많은 물건을 버렸지만 이 가방은 버릴 수 없었다. 내가 독일에 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의 마음이 담겨있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가방에 핸드폰 충전기, 이어폰, 사진기 케이블 등을 넣어두고 매일 사용하고 있다. 수녀님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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