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09 - [학교] - 새로 시작하는 소논문 - 유대인 수용소 여성(소녀)오케스트라
2017/11/30 - [학교] - 어두운 역사를 받아들이기 - 아우슈비츠 여성오케스트라
음악학 전공필수과목에는 음악학 개론, 음악사, 음악이론, 악기박물관의 악기에 대해 배우는 수업, 대중음악, 문화적·사회적 환경에서의 음악, Sound Studies 등이 있다. 음악학 개론, 음악사, 음악이론, 악기박물관의 악기에 대해 배우는 수업은 매년 같은 내용을 배우게 된다. 그에 비해 대중음악, 문화적 환경에서의 음악, Sound Studies 수업은 매 학기 주제가 바뀐다. 예를 들어 대중음악 수업에서는 유럽의 대중음악, 중남미의 페스티벌 음악 등 교수나 강사들의 연구주제에 따라 정해진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여성오케스트라 소논문은 문화적·사회적 환경에서의 음악 수업에서 쓰는 소논문이다.
내가 들었던 학기의 주제는 독일 나치시대 수용소의 음악.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2-3명 그룹을 만들어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그 주제로 소논문(18-20장)을 낸다. 프레젠테이션 주제는 수용소 연주자와 작곡가, 연주 레퍼토리, 수용자들이 불렀던 노래가사, 심리고문으로서 음악, 아우슈비츠 여성오케스트라, 부헨발트 Buchenwald 수용소의 음악, 수용소 어린이오페라 등이 있었다.
나와 Doro는 아우슈비츠의 여성오케스트라 (아우슈비츠 여성수용자들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여성오케스트라의 역할/기능에 대해 소논문을 쓰고 있다 (소논문은 각자 쓴다). 관련 문헌을 읽고 나의 언어, 그러니까 쉬운 독일어로 풀어내야 했던 프레젠테이션도 쉽지 않았지만, 참고문헌을 인용해서 논리적으로 써야하는 소논문도 역시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이렇게 블로그에 쓰며 생각을 정리를 해보려 한다.
수업을 듣기 전까지 나치시대 수용소에 오케스트라가 있는지 전혀 몰랐다. 수용소에서 음악을 연주 했다니! 아우슈비츠 수용소(1941-1944)에는 남자 수용소와 여자 수용소가 있었고 각각 수용자들로 이루어진 오케스트라가 있었다. 남성 오케스트라에는 직업음악인이 대부분이었지만 여성오케스트라는 비전공자가 많았다. 당시 여성이 음악을 직업으로 갖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 여성오케스트라에서 드물었던 직업 음악가가 중 한 명인 유대계 바이올리니트 알마 로제 Alma Rosé (1906 오스트리아 출생 - 1944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 유명한 작곡가인 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의 조카다. 알마 로제는 여성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자 솔로 바이올리스트로 활동했다. 굉장히 엄격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단원의 생존을 위해 철저하게 연습을 시켰고 그녀로 인해 오케스트라의 수준이 높아졌다. 생존자들은 그녀가 엄하기는 했지만 그 덕분에 자신들이 생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오케스트라는 그들에게 생존 수단이었다.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면 가스실에 가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첼리스트 Anita Lasker Wallfisch는 자서전(Ihr sollt die Wahrheit erben)에서, 자신이 오케스트라 단원이 아니었으면 가스실로 가서 죽었을 것이라고 한다. 몸이 좋지 않아 병동에 있었을 때 "이 사람은 첼리스트잖아." 하고 나치친위대 의사가 지나갔다고 한다. 의사는 가스실로 보낼 사람을 선별하고 있었다. 당시 아우슈비츠의 병동 Häftlingskrankenbau 이란 가스실로 가기 전 잠시 머무는 곳으로 이해되었다. 병동에 있던 수용자는 대부분 몸을 가누기 힘든 사람들이었고, 일할 수 없는 수용자는 쓸모 없기 arbeitsunfähig 때문에 가스실로 보내졌다. 그래서 수용자들은 몸이 아프더라도 (쓰러지지 않는 한) 병동에 가지 않으려 했다.
여성오케스트라는 다양한 곳에서 연주를 했다. 수용자들이 아침마다 일 하러 갈 때와 돌아올 때 수용소 입구에서 행진곡을 연주했다. 새로운 수용자가 입소할 때 연주를 했고 일요일마다 음악회를 했다. 또 병동에서 선별된 사람들이 가스실로 갈 때 그 옆에서 연주했다. 가스실에서 사람들이 죽어갈 때 지르는 비명을 숨기기 위해 Übertönung der Schreie von Häftlingen 연주를 계속했다고 한다 (다른 건물의 수용자가 듣지 않도록). 그리고 난 후 선별작업을 한 나치친위대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연주를 하기도 했다고.
'독일 대학과 새로운 학문 Uni > 외국인 학생 생존기 Studiere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일에서 대학생은 가난한 계층 (0) | 2018.03.18 |
---|---|
이 역시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0) | 2018.03.05 |
고요한 도서관 - 크리스마스 방학 후 첫날 (0) | 2018.01.08 |
괜찮아요, 나도 여러 번 떨어졌어요. (2) | 2017.12.04 |
방향 (0) | 2017.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