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의 글쓰기 모임 - 신나는 놀이터, 공감과 치유, 사랑

2022. 6. 6. 11:36일상 Alltag/작은 행복 kleines Glück

 

2022년 6월 6일 공휴일인 월요일 새벽 2시 베를린 D 내 방

 

 

오늘은 이야깃거리가 많이 떠오르는 하루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들 때 문장이 떠오른다. '글로 이렇게 써봐야지' 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은 보면 '사진을 이렇게 찍어보아야지' 생각하며 직사각형 안에 풍경을 넣어보는 상상을 한다.)

 

오늘 떠오른 생각과 감정:

잠들기 위해 이불을 덮는 순간이었다. 

 

'(미소를 지으며) 나 정말 멋진 분들과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구나! (흐뭇하고 행복한 감정)'

 

그동안 내가 경험한 글쓰기 네 번의 모임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진화하는 글쓰기 모임에 대해서. 그리고 떠오른 문장은

 

'오늘은 이야깃거리가 많이 떠오르는 하루다'

 

였다. 이 문장으로 글을 시작하고 싶었다. 서론이 길었다. 글을 시작하겠다. 

 

 

 


 

미소가 지어지는 밤

 

 

약한 조명을 켜 둔 방. 침대에 누워 글쓰기 모임 Y님 글을 보고 있었다. Y님이 3년 안에 이루고 싶은 3 가지 목표를 쓴 글이었다. 글을 읽으며 미소가 나왔다. 나는 어떤 목표를 세워볼까, 나와 같은 책 쓰기 목표를 가지고 계신 Y님과 서로 응원하며 글을 써보아야지, Y님이 책을 쓰시는데 내가 도움이 될 부분도 있겠구나(글 공모전, 잡지 투고, 출판에 대한 정보를 모아서 글쓰기 모임 사이트에 올리기)!

 

또 두 명의 다른 글쓰기 모임 멤버의 글을 읽을 때도 기분이 참 좋았다. 자신의 내면 이야기를 솔직하게 써 내려간 글에 나는 공감했다. 감동도 받았다. 새롭게 배우는 점도 있었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 모두가 성장하고 있었다. 

 

 

 

 

 

 

나의 글쓰기 모임들

 

첫 번째 글쓰기 모임 - 괴팅엔 블로그

 

첫 글쓰기 모임은 괴팅엔 블로그였다. 내가 학부를 졸업했던 도시 괴팅엔(Göttingen)에서 같이 공부하는 언니, 친구, 동생들과 만든 팀블로그였다. 글을 가장 자주 썼던 T언니와 나는 논문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우리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논문 스트레스를 몽땅 풀었다. 학생 식당의 맛있는 메뉴, 지친 몸을 이끌고 도서관 가는 일요일, 공부할 때 집중하기 위해 먹는 사탕, 자전거 전조등 안 켜서 벌금 낸 이야기, 기숙사 공용 세탁기를 오래 돌리는 법, 겨울에 귤을 먹으며 비타민 충전하는 법 등 사소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쓰며 우리는 잠시의 행복을 만끽했다. 글에 달리는 댓글을 보는 재미도 컸다. T언니가 글을 올리면 팀블로그를 같이 하는 나, 친구, 동생들이 줄줄이 댓글을 달았다. 글도 재미있었지만 댓글이 웃길 더 웃겼다. 각자의 유머 코드로 댓글을 다는데, 유머가 대댓글로 이어질수록 진화했다. 나는 조용한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댓글을 읽고 웃음이 터져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적도 있었다. 우리는 글을 쓰며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다. 대화로만 알았던 사람들을 글로 알게 되니 새로운 점이 많았다. 글로서 서로를 잘 알게 되니 응원과 격려, 공감과 위로도 더 잘해줄 수 있었다. 팀블로그 기획 모임을 핑계로 만나 함께 요리해서 밥 먹고 신나게 수다를 떨기도 했다. 마치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만나 노는 기분이었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두 번째 글쓰기 모임 -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느슨한 연대

두 번째 글쓰기 모임은 책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만나 느슨한 연대를 이루는 모임이었다. 이미 책을 출간한 경험이 있는 한 블로거가 만든 모임이었다. 글쓰기 모임 참가자들은 각자 쓰고 싶은 책 주제와 목차를 정해서 매주 글을 한 편씩 썼다. 나는 순례길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다. 우리는 두 달에 한 번 줌에서 만나서 글쓰기 고충, 궁금했던 점, 그동안 쓴 글에 대한 피드백을 공유했다. 전혀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글을 통해 공감하고 위로하고 응원하고 격려했다. 아쉽게도 나는 글을 8편 쓰고 중간에 쉬게 되었다. 연애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줌 미팅에 참가해서 연애 때문에 글을 많이 못 썼다고 하니

"사랑 때문이었다면 괜찮습니다! 통로님이 불타는 사랑을 하셨는데 그것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나요!"

하며 다들 환하게 웃으셨다. 이미 가정을 갖고 계신 참가자들은 내가 너무 부럽다고 하셨다. 연애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사실 나는 그때 이별을 막 했었을 때라 마음이 힘들었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기혼인 참가자가 말했다.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되실 거예요! 통로님은 누군가를 새롭게 만나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요!"

 

연애와 결혼 이야기를 쓰신 글쓰기 모임 참가자의 글을 읽으며 나는 이별 후 쓸쓸한 마음을 위로할 수 있었다. 책을 출간하신 세 명의 참가자들을 보며 나도 책을 출간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세 번째 글쓰기 모임 - 어쩌다 보니 인생 상담

세 번째 글쓰기 모임은 친한 친구와 시작했다. 친구는 나와 비슷한 인생 경로를 가지고 있었다. 음악에서 사회학으로 전공을 바꾼 나처럼 친구도 다양한 전공을 했으니 내 글을 잘 이해해줄 것 같았다. 나는 한국에서 음악 공부를 한 후 독일에서 사회학 공부를 한 것, 봉사활동, 인턴, 조교를 하며 배우고 느낀 점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글을 한 편 한 편 쓰면서 글쓰기 모임은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우리는 서로 글을 써서 이메일로 주고받은 후 피드백을 주었는데, 피드백이 글보다 길어지며 우리는 서로에게 인생 상담을 하고 있었다. 글에서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대답해주며 타지에 사는 외로움, 어린 시절의 상처, 가족의 의미,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 내면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글에 이렇게 큰 치유의 힘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결국 나는 내가 쓰고자 했던 글은 쓰지 못했다. 독일에서의 학업, 봉사활동, 인턴, 조교에 대한 경험 말이다. 대신 나는 더 중요한 것을 얻었다.

 

-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 나를 이해하고 친구를 이해하게 되었다.

- 나의 상처를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 드러내었다.

- 친구에게 큰 위로를 받았다. 나도 친구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였다. 

- 글의 치유 능력을 알게 되었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네 번째 글쓰기 모임 -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지금 하고 있는 네 번째 글쓰기 모임은 3주 전에 시작되었다. 나는 작년부터 루틴, 책의 좋은 글귀, 습관을 공유하는 모임에 참가하고 있다. 20명 정도 되는 비교적 큰 모임이다. 이곳에서 나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문득 모임 참가자들과 글쓰기 모임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보다는 내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참가자들 중에는 이미 책을 출간한 작가도 있었고, 블로그에 글을 꾸준히 쓰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룹 채팅방에 글쓰기 모임을 하고 싶다고 글을 올렸다. 일곱 명이 모였다. 한국, 미국, 독일 사는 곳도 다르고  20대부터 40대까지 나이도 다르고 직업도 다른 사람들이 모였다. 이렇게 나의 네 번째 글쓰기 모임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줌 미팅에서 만나 글쓰기 모임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정했다. 

 

- 시즌제 글쓰기 모임. 한 시즌은 2-3개월.

- 시즌마다 주제가 있다. 첫 번째 시즌 주제는 '나'. 나에 대한 글을 자유롭게 써본다.

- 일주일에 한 편 글 올리기. 마감은 일요일 밤.

- 노션에 글을 써서 올리고 피드백은 댓글로.

- 시즌 시작, 중간, 끝에 줌에서 만나기.

 

나는 첫 글에 이별과 기도 이야기를 썼다. 이별 후 마음이 가라앉을 때 기도를 하며, 나를 위해 시작된 기도가 헤어진 남자 친구와 나의 가족과 그의 가족으로 커져간다고 썼다. 나는 블로그에서나 누군가와 대화할 때 사랑과 신앙 이야기는 자주 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고 나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나의 깊은 내면 이야기를 하는 게 꺼려지기 때문이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또 내가 나를 드러내도 되는 편안한 상황에서 말하고 싶다. 

 

여섯 명의 글쓰기 모임 참가자들에게는 나를 드러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글에서 나를 솔직하게 드러냈고, 글쓰기 모임 참가자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솔직한 글을 썼다. 우리 모두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재미있고 귀여운 글도 있었다. 지금까지 두 편의 글을 썼다. 그리고 11편의 글을 읽었다. 

 

우리는 웃고 울며 재미있게 글을 써가고 있다. 글쓰는 기쁨만큼 글을 읽는 기쁨도 크다. 댓글을 다는 기쁨만큼 나의 글에 달린 댓글을 읽는 기쁨도 크다. 이번 주에는 어떤 글을 써볼까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주말이 가까워지면 마음이 바빠진다. 일요일에 글을 마감하면 상쾌하다. 글쓰기 모임 하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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