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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Alltag/하루하루가 모여 heute

함께 사는 즐거움 - 어쩌다 독일어 선생님

by 통로- 2021. 12. 8.

2021년 12월 7일 화요일 저녁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 Ja!

 

방문 앞에 후안이 서 있다. 물어볼 게 있단다. 

 

나: 잠시만, 나 지금 부엌에 가야 해. 국이 끓고 있을 거야. 너도 부엌으로 올래?

후안: 독일어 글쓰기 숙제를 봐줄 수 있어? 저녁 9시, 10시도 괜찮아.

나: 그래! 나 오늘 할 일 많기는 한데 시간 있을 거야. 일단 가방 싸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후안: 그래! 너 시간 될 때 알려줘.

 

 

 

 

세 시간 후 화장실 청소까지 다 끝낸 나는 후안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나: Ich hab heute leider nicht so viel Zeit. Ich kann aber kurz über deinen Text schauen.

후안:.....?

나: Oh! (웃는다 ㅎㅎ) Today I don't have much time. But I can check your text for 10-20 minutos. 

 

영어로만 대화하는 후안에게 나는 독일어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후안을 만나기 전 부엌에서 알렉스와 독일어로 대화했다. 그리고 후안 방문을 두드렸다. 내 뇌에서는 하고 싶은 말만 떠올리고, 그 말을 독일어로 혹은 영어로 해야 할지 결정하지 않았다 보다. 익숙한 언어로 나왔다. 방금 쓴 언어로.

 

 

 

 

페루 사람인 후안은 독일어 기초반(A2)이다. 일주일에 한 번 아침 10시에 옆방에서 후안 목소리가 들린다. 열심히 독일어를 배우는 목소리가 매우 또렷하게 들린다. 기숙사는 방음이 되지 않는다. 아무튼 후안은 일 년째 열심히 독일어를 배우고 있다. 하지만 아직 기초반이다. 영어로 석사를 하며 독일어를 배우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후안은 온라인으로만 수업을 들어서 독일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었다. 기숙사 친구들도 후안과는 영어로 대화한다. 

 

2주 전 후안이 나에게 독일어 숙제를 봐줄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흔쾌히 봐주겠다고 했다. 기숙사 복도 의자에 앉아서 한 시간 동안 후안이 쓴 독일어 쓰기 숙제를 봐주었다. 내가 한참 독일어 문장 구조를 설명하는데 후안이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설명해주는 표현을 모르냐고 하니까 후안은 모른단다. 나는 후안이 독일어 중급반 정도 되는 줄 알고, 중급반에서 배우는 문장 구조를 설명하고 있었다. 후안은 기초반이었다. 

 

오늘 후안 쓰기 숙제를 봐줄 때 나는 내가 후안의 글에서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중했다. 나는 독일어 기초반에서 배우는 내용을 중심으로 후안 쓰기 숙제를 봐주었다.

 

 

 

 

 

 

문장 1

 

후안이 쓴 재미있는 문장:

Ich habe viele Bekannte, aber ich habe nur vier echte Freunde. Alle meine Freunde sind aus Peru und jetzt sie leben dort. Ich habe keine deutsche Freunde [...]

나는 아는 사람은 많지만, 진짜 친구는 네 명이 있습니다. 나의 친구들은 모두 페루 사람이고 페루에 삽니다. 나는 독일인 친구가 한 명도 없습니다.

 

나는 이걸 읽는데 찡했다. 나는 후안을 보면서 muy triste! (너무 슬프다!) 하며 웃었다. 후안도 웃었다. 

 

후안: 아니, 내가 독일어 수업에서 말을 거의 안 하거든. 독일인 친구가 없어서 독일어 연습을 못한다고 말하고 싶었어. 

 

 

 

 

 

 

 

문장 2

 

후안의 문장:

Ich möchte mich gern bei der GIZ bewerben.

 

나: 후안, 너도 여기서 일하고 싶어? 나도 GIZ 관심 많아. 나 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고 싶거든. 한국에도 KOICA라는 기관이 있어. 

 

 

 

나는 후안의 숙제를 모두 봐주고 말했다. 

나: 너 글 잘 쓴다! 너 글 쓰는 수준이 기초반 수준보다 훨씬 높은 것 같아. 

후안이 웃는다. 

 

기숙사에 살다 보니 나는 어쩌다 독일어 선생님이 되었다. 어학원을 다닐 때 쓰기 시험이 가장 어려웠다. 시간이 흘러 흘러 이제 나는 친구 독일어 쓰기 숙제를 봐주고 있다. 많이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