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일 베를린 내 방 새벽 3-4시 반
프레젠테이션 다음날 하루 종일 수업 듣고 집에 와서 일찍 잠들었다
방 불 끄고 자는 걸 깜박해 새벽에 눈이 떠졌다. 화장실 다녀와 쓰는 글이다.
해냈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났다. 해냈다. 기본소득이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참고문헌을 요약한 후 필요한 부분을 보충해 발표했다. 마지막에는 토론 질문을 준비해 수업에서 토론을 했다. 기본소득 (UBI: Universal Basic Income) 수업이었다. 나는 러시아 친구 Iulia와 함께 45분 동안 발표했다.
누군가에게 쉬운 것이 나에게는 어렵다. 누군가는 뚝딱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나에게는 많은 시간과 고민이 필요하다. 영어로 하는 프레젠테이션이 그것이다. 석사를 시작하고 거의 매 수업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쉽지 않다. 아니, 솔직하게 말해 어렵다. 나는 학문적 지식이 부족하고 영어도 부족하다.
나는 영어로 진행되는 사회학 석사 과정에 있다. 학부는 독일어로 사회학과 음악학을 복수 전공했다. 학부 때와 마찬가지로 석사 때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졸업할 수 있을까? 너무 무모한 도전을 했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나는 왜 영어로 석사를 공부하는 선택을 했을까?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나는 부족하다. 사회학이라는 학문은 공부해도 끝이 없고, 사회학 연구방법인 통계학 수업은 들을 때마다 새롭다. 독일어로 사회학 학부과정을 겨우 마쳤는데 영어로 석사라니. 내가 나를 과대평가한 것일까?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지 못했나? 바꿀 수 없는 것을 지혜롭게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바꾸려는 용기가 과했을까?
이런 고민을 매 학기 한다. 한 학기에 다섯 번 이상 진지하게 고민한다. 수업에서 발표할 때마다, 시험 준비할 때마다, 소논문(페이퍼) 제출할 때마다 한다. 다행히 수업에서는 이런 생각을 덜 한다. 수업은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고 심지어 재미있을 때도 있다. 배우는 보람이 크고 학문적 성장을 느낀다. 다행이다. 수업은 재미있어서.
내가 나의 부족함을 느끼는 이유는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새롭게 무엇인가 배우고 도전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과정에서 내가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유학하는 시간은 언젠가 끝난다. 이렇게 고민하고 겨우 겨우 허들을 넘는 경험도 언젠가는 그리울 것이다. (허들을 넘는 경험은 발표, 시험, 소논문 쓰기다.)
독일어로 공부했던 학부 과정에서도 프레젠테이션은 쉽지 않았다. 특히 학부 초반에 몇 분 짜리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몇 날 며칠을 긴장하며 보냈다. 석사 공부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프레젠테이션 준비는 수업을 알아듣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참고문헌(저널 논문)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개요를 짜서 발표해야 한다. 글로 쓰인 영어를 말하는 영어로 바꾸어야 한다. 수업에서 함께 토론할 질문도 만들어야 한다.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때 내 부족함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하루가 지나니 그나마 이 정도 하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어로 사회학을 공부하는 것은 어렵지만 나는 독일어를 한다. 사회학이라는 학문은 공부해도 끝이 없는 게 맞다. 내 전공 분야인 교육사회학만 깊게 하면 된다. 물론 교육사회학 공부도 끝이 없다. 나는 생각보다 발표를 괜찮게 한다. 나는 시험을 앞두고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다. 괜찮다. 석사, 해낼 수 있다. 만약 못 끝내면 어떤가? 도전했고 성장했으면 된 거지.
나에게 유독 어렵게 느껴지는 게 있다. 내가 실제로 부족하기 때문일 수 있다. 내가 그런 과정에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어려운 길로 돌아갈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우느냐다. 현재 내가 가는 어려운 길 덕분에 미래의 나는 무엇인가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삶을 지혜롭게 사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쉬운 것이 나에게는 어렵다. 이 말은 누군가에게 어려운 것이 나에게는 쉬울 수도 있다는 의미다. 모든 분야, 모든 전공, 모든 직업에서는 어려운 시기가 있다. 열심히 하지만 발전이 없는 것 같은 시기가 있다. 나만 부족하게 느껴진다. 음악을 할 때도 그랬고 어학원에서 독일어 배울 때(쓰기 시험)도 그랬다. 독일어로 학부 과정을 하면서도 그랬다. 하지만 그 과정은 누구나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 시간을 묵묵히 보내다 보면 어느새 많이 발전한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가 된 나를.
이어지는 글: 영어로 석사를 공부하는 이유
영어의 변화
글을 시작하며 개요를 짰다. '해냈다' 소제목 글이 길어져 다른 글은 쓰지 못했다. 쓰고 싶은 내용 소제목을 이곳에 남겨 둔다.
- 어쩌다 듣게 된 기본소득 수업
- 수업에서 확장되는 사고: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초, 중, 고등학교 무상교육도 보편적 복지인 기본소득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예전에는 초, 중, 고등학교에 수업료를 내며 다녔지만 지금은 무상교육이 되며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하지만 학교 교육과 기본소득의 차이는 있다. 기본소득은 현금으로 제공된다. 현금은 어떻게 쓰일지 나라가 정할 수 없다. 좋은 의도로 지급된 기본소득을 어떤 사람은 마약을 사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나는 석사 논문에서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쓸 것이다. 공교육에서도 문화예술교육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학생에게 좋은 기회일 뿐 아니라 음악가에도 교육자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니까. 학생을 선별해 문화예술교육을 제공하는 것과 공교육에서 모든 학생에게 보편적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제공하는 차이는 무엇일까? 기본소득 수업에서 소논문(페이퍼, Term Paper)를 제출한다면 나는 어떤 주제를 쓰고 싶은가? 처음 수업을 들을 때는 기본 소득과 내 석사 논문 주제가 전혀 관련 없다고 생각했다. 어제 수업에서 든 생각: 기본소득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 기본소득이 예술가에게 미치는 영향? 기본소득이 문화예술분야에 미치는 영향?
- 발표 주제: 우선순위는 있었지만 사실은 무작위로
- 발표 준비하며 긴장하며 보낸 며칠
- 페미니즘, 젠더가 나오면 나는 긴장한다: 페미니즘 이론은 아직 내게 너무 어렵다. 지난 학기 너무 어렵dns 참고문헌을 읽었다. 페미니즘+교육사회학+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이 섞인 논문이었다. 이번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기도 전에 겁을 먹었다. 프레젠테이션 주제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교수님이 정해주셨다.
- 지난 학기에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번 학기에는 이해할 수 있다: 젠더 관점에서 본 기본소득. 참고문헌이 내가 걱정했던 것만큼 난해하지 않았다. 좋은 참고문헌을 선정하는 것도 교수의 역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텍스트(참고문헌)을 분석하기 전 한국 논문, 기사, 영상을 보며 기본적인 기본소득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텍스트 이해를 잘 할 수 있었다. 특히 한국 논문 한 편이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Fraser, Zelleke 등 영어 참고문헌에 있던 학자들이 대거 등장! 한국어로 논문을 쓴 연구자에게 감사했다.
- 이번 발표는 어렸을 때 매주 가던 악기 레슨 느낌이었다. 실기 시험, 무대 연습과도 비슷하고. 한독주니어포럼에서 제안서를 발표했을 때는 무대에서 연주하는 느낌이었다. 무대에서 하는 연주(비유적 표현)를 위해 현재 나의 경험과 고민이 있는 게 아닐까? 발표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미리 내가 무엇을 말할지 설명했고, 쉬운 영어로 천천히 말했다. 프레젠테이션 마지막에 토론하면서 나의 개인적인 생각도 말할 수 있었다. 발표 준비하며 참고 문헌을 읽고 관련 영상을 보며 든 생각 말이다. 사고가 확장되는 경험이었다. (머릿속에 공간 열리는 느낌)
- 준비가 충분하지 않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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