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24일 오후 단소집
계기: 한국 집에 있던 책이다. 아버지가 보신 책. 아버지는 책을 정말로 깨끗하게 보신다. 나는 좋은 책이 생기면 색연필로 알록달록 밑줄 긋고, 책 여백에 내 생각을 쓴다. 내가 독일에서 가져온 책, 한국에 와서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한 책, 부모님 댁에 있던 책을 작은 집에 가져왔다. 시험이 끝난 오늘 나에게 보상을 하기로 했다. 시간을 선물하기로 했다. 아버지가 책을 읽는 자리에 앉아 옆에 읽고 싶은 책을 잔뜩 쌓아두었다. 나는 책을 잔뜩 쌓아두고 읽을 때 행복하다. 쌓아둔 책은 다 읽지 못하지만 좋은 책이 내 곁에 가득한 이 순간이 참 좋다.
독서노트
정신분석학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활용하는 가설이 '정신결정론'이다. 그 어떤 행동에도 원인이 있다는 가설이다. 쉽게 말해 콘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다. 우연이란 없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모든 일은 천천히 차곡차곡 진행된 결과다. 전쟁으로 좌절과 허무감에 빠져 있을 때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나의 무의식 속에 스며 있다가 천천히 실현되어 가는 과정이 그렇다. 나도 모르게 새겨진 희망의 끈이 나를 산으로 이끌었고, 다시 히말라야 네팔로 향하게 했다. 그리고 힐러리 경을 만나 나를 돌아보았고, 나아가 봉사를 내 삶의 한 축으로 만들었다.
좋은 생각이 좋은 행동을, 좋은 삶을 이끈다는 것은 정말 맞는 말이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마음에 진정으로 새겨 놓는다면 그 새김은 이미 자신을 바꾸어 놓을 힘을 잉태하는 것이다. 비록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소망이라도 간직하고 바란다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현실화시킬 기운과 힘이 생긴다. 밤하늘의 별을 따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의 꿈은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어른이 된 소년은 도시에서 팍팍하게 살아간다. 그러다 마침내 시골로 내려가 비로소 평화로워졌다. 별이 잘 보이는 시골에서 살게 된 것은 어린 시절부터 어린 시절부터 별을 좋아하고 가슴에 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소망과 기도, 바람은 이렇듯 연결될 수 있다.
지금의 60~70대 사람들은 힘든 세월을 살아왔다. 요즘 젊은 이들도 그들 나름대로 또 다른 시대적 고통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잡고 실천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나는 잘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러면 시간의 힘이 우리가 무의식중에 바라는 곳으로 천천히 이끌어 준다. (이근후,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7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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