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28일 수요일 저녁 7시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말한다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반년 전에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었다. 나에게 가장 와 닿은 부분은 '사랑은 주는 것'이라는 문장. 나는 사랑을 떠올리면 주로 받는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던 시점 한 친구가 있었는데 나는 그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우리는 스터디 모임에서 만났고 매일 오전, 오후, 저녁 함께 공부했다. 스터디 그룹은 시간이 되는 친구들이 모이는 곳이라 세 명, 다섯 명, 두 명 등 매번 모이는 숫자가 달랐다. 그 친구와 나는 제출이 얼마 남지 않은 석사 논문과 소논문을 쓰고 있어서 매일 얼굴을 보았다. 저녁에는 둘만 있는 날이 많았다. 서로의 컨디션, 글쓰기 문제, 일상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랑의 기술>을 읽고 나는 그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건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존재'였다. 논문 쓰기는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가 있으면 못 할 것 같은 논문 글쓰기도 할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나무 같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나무 같은 남자를 만나라고 했다. 뿌리가 튼튼해서 기댈 수 있는 남자를 만나라고. 나는 늘 나무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독일에서 외국인으로 살며 언어가 어렵고 이 나라 시스템을 잘 모르니, 나보다 이 나라를 잘 아는 나무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나 보다. 에리히 프롬 책을 보며 곰곰이 생각하니 내가 스터디 그룹의 친구에게 나무가 되어주는 것은 언어를 잘해서도 글쓰기를 잘해서도 아니었다. 나는 항상 그 자리에 있기만 하면 됐다. 나는 남들보다 공부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니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나도 충분히 나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나를 잘 알고 나를 잘 돌보고 내 마음의 소리를 잘 듣기 때문이다. 최근 2년 동안 일어난 변화다. 버스 사고 이후 몸과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되면서 나의 내면은 단단해졌다. 내가 나를 신뢰하고 나를 잘 알니까 나도 나무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에게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존재가 된다면 나는 그에게 나무가 될 수 있었다.
나에게는 더 이상 나무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하지 않다. 물론 나와 상대가 모두 나무라면 서로가 성장하는 관계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무니까 상대가 아직 나무가 아니더라도 기다려줄 수 있다.
글로 쓰니까 내가 생각하는 대로 모두 표현할 수 없는 게 아쉽다. 하지만 이런 주제는 말로 하나 글로 쓰나 어려운 것 같다.
에리히 프롬 < 사랑의 기술> 인용구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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