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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Alltag/베를린 순례길 Berliner Jakobsweg

베를린 순례길 - 아, 나 책 쓴다고 했었지! 부랴부랴 8편의 글을 모았다

by 통로- 2021. 5. 1.

2021년 4월 30일 금요일 저녁

4월의 마지막 날

 

 

금요일인 오늘 베를린 순례길을 걸었다. 평소에는 주말에 순례길을 걷는다. 어제부터 주중에도 걷기 시작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을 때는 걷는 게 최고다. 순례길을 걸으면 내 인생의 방향을 떠올리게 된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려놓을 것은 무엇인지.

 

나는 9개월 전 매뉴얼을 만들어놓았다. 고민이 있거나 실패를 했을 때 무조건 순례길로 오기로. 순례길이라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고 집 앞에서 산티아고를 향해 걷는 길이다.

 

오늘은 작년에 순례길에서 녹음했던 일기를 들으며 걸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을 그때도 했더라. 고민의 성격은 달랐지만 본질은 같았다. 오늘 나의 결론은

 

'고민할 수 있어 좋다. 베를린 순례길을 처음 걸었을 때 가장 큰 고민이었던 학업이었다. 버스 사고로 몸이 아파 학업을 계획대로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건강해졌고 학업은 안정되었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현재 고민은 이 두 가지가 안정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고민이다. 이 고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오늘은 작년 7월 19일에 시작했던 베를린 순례길 시작점에서 시작했다. 처음 걸었을 때는 여유가 없어서 앉아보지 못한 벤치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영상 일기도 남겼다. 걷다가 옆 동산(산이라 하기엔 너무 낮고 숲이라 하기엔 언덕이 많은)에도 올라가 보았다. 처음 걸었을 때는 지도를 보느라 지나쳤던 곳이었다. 나무가 가득한 동산을 오르니 명료해졌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오늘 순례길에서 느꼈던 감정, 배운 점을 블로그에 적으려다 마감이 생각났다. 한 달 전에 나는 호기롭게 책 쓰는 모임을 시작했다. 출간 작가인 이웃블로거가 하는 모임이었다. 나는 순례길 이야기를 모아보고 싶었던 참이었다. 4월 30일까지 8편의 글을 작성해야 했다. 책 쓰는 모임을 하기로 했을 때 일주일에 한 편씩 새 글을 써보려 했다. 하지만 웬걸! 새 글을 하나도 쓰지 못하고 블로그에 있는 글을 조금 편집해 8편의 글을 만들었다. 

 

블로그에 글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던지! 글을 길게 쓰는 습관 덕분에 8편 글 모두 A4 용지 한 장은 넘어갔다. 

 

 

 

과연 내가 정말로 책을 낼 수 있을까? 모르겠다. 일단 시작은 했다. 시작해야 끝도 날 것 아닌가. 끝이 안 나도 과정에 충분한 의미가 있다. 오늘 8편의 글을 편집하며 예전에 쓴 글을 다시 한번 읽으며 '순례길에서 이걸 배웠구나'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오늘 순례길을 걸었고 글을 쓴다.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2021년 4월 30일 순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