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9일 월요일 새벽 베를린
여러 학문의 궤도를 지나는 친구들과 좋은 대화를 나누었다. 경제·경영을 전공하는 친구 두 명과 어젯밤 늦은 시각까지 질적 연구의 필요성에 관해 토론했다. 사회학도인 나에게 질적 연구란, 양적 연구와 마찬가지로 사회과학 연구를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연구 방법이다. 질적 연구와 양적 연구는 서로의 한계점을 보완하는 존재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사회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당연한 사실로 여기는 것이더라. 수학을 공부하고 경영대에서 박사 과정을 하는 친구와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고 경제학 박사 과정을 하는 친구에게 질적 연구 방법의 필요성은 이해하기 어려웠으리라. (두 친구 모두 통계를 활용해 연구한다.)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친구들에게 질적 연구의 의의와 필요성을 설명했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나는 학부 때 배웠던 질적 연구를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했다. 뇌 어딘가 깊이 숨어있던 질적 연구 의의, 연구 방법, 예시 등을 꺼내 친구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표현했다. 학부 수업을 들으며 보았던 로젠탈(Gabriele Rosenthal) 교수의 질적 연구방법론 책(Interpretative Sozialforschung)을 꺼내 읽으며 친구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려 노력했다. 앤서니 기든스 (Anthony Giddens) 교수의 책에서 막스 베버의 이념형 (Idealtypus, Ideal type) 개념을 소개하며 질적 연구 방법에서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설명했다'라는 표현보다는 '설명을 시도했다'가 더 맞겠다. 내가 좀 더 정확하고 타당성 있게 설명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토론 마지막에 친구들이 나에게 물었다. 자신들이 질적 연구 방법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나는 그 질문이 반가움을 표하며 '사회과학 연구방법론 학부 수업'을 들어보라고 했다. 경영대학원에 다니는 친구가 질적 연구를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지 물었다. 나는 한 학기에서 일 년 정도 학부 수업을 들으면 질적 연구 방법의 기본적인 지식을 가질 수 있을 거라 말했다. 통계학자라는 정체성을 잠시 내려두고 백지 상태로 수업을 들어보라고 했다. 경제학 박사과정 친구가 말했다. 자신이 자꾸 교수에게 딴지를 걸게 될 것 같다고.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딴지 말고 궁금한 점을 교수에게 질문하면 교수가 아주 반가워할 것이라고. '사회과학 연구방법론 학부 수업'을 들어보라는 나의 이야기가 친구들에게 너무나 막연하게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친구들은 제법 진지하게 나의 조언을 받아들였다.
토론은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지식과 지혜의 영역을 넓혀가는 데 의의가 있다.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질적 연구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양적 연구자가 질적 연구를 이해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게 되었다. 우리의 대화는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서로의 학문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시작한 대화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를 존중하며 토론했고 스스로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우리의 학문 궤도를 떠올려보았다.
[예술 - 인문학 - 사회과학 - 공학 - 자연과학 - 순수과학]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학문의 궤도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일직선이 아니라 예술과 순수과학이 맞닿아 있는 띠 모양이다.
1. 예술 -> 인문학 -> 사회과학 궤도로 이동한 나,
2. 순수과학 -> 사회과학으로 이동한 경영 대학원 친구,
3. 공학 -> 사회과학 궤도로 이동한 경제학을 공부하는 친구.
다른 궤도를 이동하던 우리가 사회과학이라는 궤도에서 만났다. 나는 우리가 사회과학 궤도로 진입하여 서로의 학문에 호기심을 가지고 대화했다는 사실이 기쁘다. 우리가 추구하는 살롱 문화가 이미 우리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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