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기쁨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니까

2020. 10. 21. 05:15일상 Alltag/하루하루가 모여 heute

 

2020년 10월 20일 베를린 P

 

 

 

 

우리 집 가훈은 기쁨이다.

 

사실 우리 집에는 가훈이 따로 없었다. 초등학교 때 가훈을 써오라는 숙제를 받고 아빠께 여쭤보니

 

"우리 집 가훈은 기쁨이야."

 

라고 하셨다. 가훈이 기쁨이라니. 가훈은 뭔가 멋있는 말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기쁨'은 문장형도 아니고 교훈도 없고 말이다. 어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기쁨'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무언가를 잘하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보다 기쁘게 사는 게 더 중요하고 생각한다. 기쁘고 즐거우면 무엇인가 더 열심히 하게 되고 남을 배려할 마음의 여유도 생기기 때문이다.

 

기쁨은 마음에 따뜻한 것이 퍼지는 감정이다. 좋은 대화를 나누었을 때, 산책을 할 때, 좋은 영화를 보았을 때, 친구에게 편지를 쓸 때 기쁘다. 어제도 그 기쁜 감정을 느껴서 블로그에 기록해본다.

 

 

 

 

 

 

 

 

 

 

어제는 베를린 대학 오케스트라의 겨울학기 첫 번째 연습이 있었다. 베를린 음대 오케스트라가 아니고 베를린 대학 연합 오케스트라다. 코로나 여파로 지난 학기에는 오케스트라 연습과 연주회가 취소되었다고 했다. 이번 학기에는 연주자들이 간격을 유지하고 앉아 연습을 한다. 각자 집에서 보면대도 가져와야 한다. 공간 때문에 현악기와 관악기가 따로 연습한다. 드보르작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연습했다. 

 

어제 오케스트라 연습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 기분이 참 좋았다. 베를린에서 시작하는 스페인 순례길을 걸을 때나 좋은 친구와 통화하고 느끼는 감정이었다. 마음이 따뜻하게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예전에는 이런 감정을 느꼈을 때 '참 좋은 시간이었네! 좋은 감정이 드는구나'하고 말았다. 다시 내게 주어진 임무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임무는 공부이기도 했고 알바이기도했다. 나의 삶의 '주'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기쁨은 그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자 나를 즐겁게 만드는 일이다. 오케스트라 연습을 다녀와서 즐거운 마음으로 과제를 하는 것이지, 과제를 하고 남는 시간에 오케스트라를 가는 게 아니다.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며 그 기쁨을 적극적으로 기록하기로 했다. 삶은 기쁨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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