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카드 - 로마법 수업, 한동일

2020. 6. 25. 02:48일상 Alltag/시와 글과 영화와 책 Bücher

2020년 6월 24일 수요일 저녁

 

로마법 수업, 한동일 (2019 문학동네)

 

계기: 한동일 작가의 <라틴어 수업>을 밑줄 그으며 읽었다. 항상 옆에 두고 볼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 뿐 아니라 삶의 지혜를 책에 풀어 놓은 책. 작가의 다른 책들도 검색해보았다.

이번에 아버지가 독일로 보내신 택배에 책을 몇 권 부탁드렸다. 그 중 하나가 <로마법 수업>. 아직 30 페이지 밖에 읽지 못했지만 포스트잇으로 표시해놓은 부분이 많아서 독서카드를 작성했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편이라, 이렇게 한 번 읽을 때마다 독서카드를 작성하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처음엔 이탈리아어로 진행되는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이해하기는커녕 교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이탈리아어인지 라틴어인지 구분하지 못해 허둥거렸지요. 민법, 국제법, 로마법 등의 법학 과목 수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당 과목의 교재들을 술술 읽어가야 하는데, 마치 희미한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읽어도 그 의미를 명확하게 알 수가 없었습니다.

(6 페이지)

 

 

석사 과정 때 느낀 로마법의 어려움이 '벽'과 같았다면, 이곳에서 느낀 로마법의 어려움은 그야말로 '태산'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로마 로타나의 변호사가 되고자 하는 이에게 로마법은 모국어나 일반상식처럼 반드시 체화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더는 더욱 이를 악물고 로마법 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7 페이지)

 

 

내 삶과 마음을 건드리지 못하는 공부는 금방 잊히며, 결국 아무 데도 써먹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그렇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생활인들의 가슴에 와닿는 로마법을 전하고 싶었던 제 고민의 결과물입니다.

(8 페이지)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저물고 나면, 이내 밤이 오고 새벽에 이르러 또다른 아침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하루가 바뀌는 그 순간, 대개 사람들은 잠들어 있습니다. 변화란 언제나 그렇게 조용히 찾아오지요. 사실상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지구도 적도를 기준으로 1초에 463미터의 속도로 자전하는데 이것을 실감하는 이는 없습니다. 1초에 463미터의 속도면 시속 1667킬로미터의 엄청난 속도이건만, 그 속도를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마치 지구의 자전처럼 그렇게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지만, 매일 도돌이표를 찍듯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저도 모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그것이 긍정의 방향이든 부정의 방향이든 간에요. 우리 모두는 분명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11 페이지)

 

 

저의 로마법 수업이 파국으로 치닫는 이 사회에 큰 충격과 전환을 가져올 수는 없겠지만, 당신의 가슴에 작은 파동을 일으킬 수 있기를, 그리고 당신의 마음에 찾아온 그 일렁거림이 '세계의 조용한 혁명'으로 이어지길 소망해봅니다. 

(12 페이지)

 

 

만일 타인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려 거울 속의 내 얼굴뿐만 아니라 더 깊숙한 내면까지 정직하게 응시할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지는 않을지라도 스스로를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23 페이지)

 

 

그러나 저는 어떤 면에서는 로마시대와 오늘날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노골적인 신분제만 없다 뿐이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조건과 양상은 어떤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거든요. 물론 오늘날에는 '자유인인가? 노예인가?'라고 대놓고 묻거나 신원을 조회하는 일은 거의 없지요. 하지만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소속과 경제력에 대한 교묘한 질문을 통해 끈임없이 사람을 가르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

"당신은 전임교수인가? 시간강사인가?"

"당신은 서울캠퍼스 학생인가? 지방캠퍼스 학생인가?"

(26-27 페이지)

 

 

여성, 소수자, 장애인, 빈자들이 지금도 머리에 피가 맺히도록 두드리고 있는 저마다의 '유리 천장'은 또 얼마나 강고합니까? 차라리 로마시대처럼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신분제가 있었던 사회가, 지금처럼 내 머리 위에 드리운 것이 푸른 하늘인 줄 알았더니 개인의 노력으로는 절대 깨부술 수 없는 무서운 유리천장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 사회보다 그 절망과 피로도는 덜하지 않았을까요?

(2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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