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lin am Montagabend, 27. April 2020
블로그의 순기능 중 하나는 내가 쓴 글을 통해 새로운 글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오늘 유입경로에 <라틴어 수업> 한동일 작가의 이름이 자주 보였다. 검색을 하다 신문에 기고한 작가의 글을 보게 되었다.
2017년 ‘라틴어 수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골방에서 공부만 하는 백면서생이었던 나는 갑자기 인터뷰도 하고 강연도 다니기 시작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많은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의외로 “당신이 쓴 책 라틴어 수업 가운데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이 어디냐?”고 묻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사실 라틴어 수업에서 내가 방점을 찍고 싶었던 문장은 바로 이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개인적, 사회적인 자아가 실현되지 않으면, 인간은 고독하고 외롭고 소외된 실존과 마주해야 한다.”
[...]
인간은 개인적, 사회적 자아가 실현되지 않으면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어도 한낱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개인적, 사회적 자아를 실현할 수 있을까. 거대하고 휘황한 현대 문명은 우리를 저마다의 인격과 이상을 지닌 인간의 지위에서 끌어내려 무수한 소비자이자 무지한 대중의 일원으로 전락시키려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나 단독하고 존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가끔 인간의 눈이 손끝에 붙어 있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가끔은 내가 나 자신을 적나라하게 관찰할 수도 있을 텐데, 인간의 눈은 얼굴에 붙박여 있어서 구조적으로 늘 상대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내가 나를 보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기도’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명상’이라고 하는데, 그 명칭이야 어떻든 간에 스스로의 내면과 세계에 조화로운 질서를 만들려면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해야 한다. 마음을 가다듬어 자신에게 집중하며 자기 자신 안에 마음을 붙들어 두어야 한다.
단 하나의 진영에 몸담고 내 편이 아닌 다른 편에 속한 자의 이야기는 가혹하게 비판하고 적대시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자꾸만 나 자신보다는 상대의 허물만을 바라보려 한다. 내가 아닌 타자에게, 우리 진영이 아닌 상대 진영의 사람에게 쏠려 있는 나의 눈과 마음을 돌려 스스로에게 집중해야 한다. 오직 그 길만이 내 안에 있는 보잘것없음과 우리 사회의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동시에 발견하고, 나 역시 보잘것없는 전체의 일부임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나의 아집을 넘어 우리를 향해 가 닿는 방법일 것이다. (한동일, 우리는 다 같이 존엄한 인간이다. 동아일보 2019.11.21)
오래 두고 보고 싶은 <라틴어 수업>
로마법 수업도 꼭 읽어보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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