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치기 독서 일기 1 -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2020. 3. 25. 06:02일상 Alltag/시와 글과 영화와 책 Bücher

2020년 3월 24일 화요일 저녁 베를린

 

 

 

해냈다. 끝까지 읽었다.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은 내가 열어보고 닫는 (더 이상 읽지 않는) 종류의 책이었다. 작가가 워낙 유명해서 꼭 읽고 싶었지만, 페이지 넘기는 게 힘들더라.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읽지 않았을 책. 유튜브 라이브로 진행되는 독서모임 덕분에 끝까지 읽었다. 

 

읽기 어려운 이유를 분석해보았다. (통계학 공부하며 생긴 습관인 듯. 자꾸 분석을 하게 됨.)

 

1.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일을 쓴 소설이라 묘사가 많다. 영국 문화를 잘 알고 1900년대 런던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할 수 있었다면 수월하게 읽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며 해결되었다. 영화 이야기는 곧 이어진다)

 

2. 영어 특유의 문체 때문에 읽기 어려웠다. 그래서 영어로도 읽어보았는데 속도가 안 나더라. 버지니아 울프는 그녀만의 문체가 있다고 한다(버지나아 울프 책 처음 읽어 봄). 번역가도 원작의 문체를 살리며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번역하느라 애를 썼을 것이다. 

 

독서 모임 유튜브 라이브는 일요일 12시 반이었다. 하지만 나는 토요일로 착각을 했다. 금요일까지도 책 초반에 머물렀다. 금요일 밤 잠들기 전 새벽 6시 알람을 맞추어 놓았다. 이런 알람은 보통 벼락치기 공부할 때 맞추는 것이다. 독서 모임 책 한 권 읽는 건데 꼭 공부하는 것처럼 해야 하나, 지금까지 왜 이렇게 책 읽기를 미뤄왔다 한숨을 쉬며 잠이 들었다.

 

토요일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요가를 했나? 기억도 잘 안 난다. 일단 책을 읽었다. 한참 책을 읽다가 아침 10시 즈음 독서모임 카톡방 알람이 울렸다. 독서 모임 참가자인 힘멜 님이 '내일 11시에 만나요!' 카톡을 보낸 것이었다.

 

응? 내일? 독서모임은 오늘 아닌가? 

독서 모임이 오늘이 아니냐고 물어보니 내일이란다. 일요일. 나는 바보였다 -_- 그것도 모르고 새벽 6시에 일어나 세수도 안 하고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마음을 졸이며. 내 자신이 너무 웃겼다. 다시 침대로 돌아가 꿀잠을 잤다. 평화로운 토요일을 보내고 밤에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무리 읽어도 턱턱 막혔다. 그래도 읽어야 하니 읽었다. 반 이상을 읽었을 때 등장인물 이름이 헷갈려 인터넷 검색을 했다. 그러다 댈러웨이 부인 영화를 발견했다. 뭐? 영화가 있다고?

 

쉬운 길이 있었네. 영화를 보면 다 해결 될 일을 왜 이리 돌아왔나!

지난달 독서 모임에서 읽었던 소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그해 여름)은 일부러 영화를 보지 않았다. 소설의 여운이 너무나 강렬해서. 내가 상상했던 주인공과 풍경이 영화라는 영상 매체를 통해 누군가 만든 이미지로 굳어지는 게 싫었다. 그래서 소설을 보고도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댈러웨이 부인> 영화를 발견하고 어찌나 기뻤는지. 

 

그래! 영화를 봐야지! 상상으로는 도저히 1900년대 초반 런던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잖아? 더구나 버지니아 울프가 얼마나 자세하게 묘사해놓았는지! 주인공 클라리사의 독백(생각의 흐름, 의식의 흐름) 뿐 아니라 다른 주인공들의 독백까지 연이어 나오니까 누가 하는 말인지 헷갈리잖아. 이건 영화로 봐야 해.

영화를 보기 시작했을 때는 밤 11시 30분이었다. 영화가 정말 고맙더라. 1997년에 만들어진 영화라 화질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도 (화질 따지는 편) 영화에 푹 빠져 보았다. 지금껏 소설을 읽으며 헤매었던 부분이 영상으로 펼쳐지자 '역시!' 무릎을 쳤다. 50대 클라리사와 20대 클라리사는 어찌나 싱크로율이 좋은지! 그녀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벼락치기 독서 일기 2에서 이어집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