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20일 생일 다음날 저녁 베를린
4년 만에 초등학교 친구와 통화를 했다. 그동안 가끔 카톡으로 안부를 주고받기는 했지만 통화는 아주 오랜만이었다. 며칠 전 친구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독일 코로나 상황이 어떻냐고. 잘 지내고 있냐고. 나도 친구의 안부를 물었다. 친구가 있는 곳은 어떤지 전화 통화를 하기로 했다. 4년 만의 통화였다.
4년 전 통화했을 때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친구의 둘째 딸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코로나 이후로 변한 일상과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내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우리가 절교하고 지냈던 2년 동안의 친구의 이야기.
친구와 나는 1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는 둘도 없는 단짝이었다. 4학년 어느날 우리는 크게 싸웠다. 나는 더 이상 우리가 친구로 지낼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절교를 선언했다. 3 학급밖에 없었던 초등학교에서 우리는 종종 마주쳤지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싸늘하게 지나갔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중학교 때 싸이월드 쪽지로 화해했다. 그 이후로 가끔 소식을 들으며 지낸다.
절교를 했던 친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까지 연락하는 유일한 초등학교 동창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단 둘 밖에 없는 초등학교 친구라, 우리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교회를 다니는 친구는 우리의 인연이 참 감사하다고 했다. '감사'라는 표현이 조금 어색했다. 너무 착한 표현인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 그렇게 삐치고 싸우고 질투하며 지냈던 우리였다. 나이가 들어 한 명은 교회 한 명은 성당을 다니며 너무 착해져 버린 걸까? 인생의 쓴맛을 보고 철이 든 걸까? ‘연락해서 좋다,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서 좋다, 우리의 인연은 소중해’ 등 조금은 오글거리는 대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제는 루시아와 긴 통화를 했다. 스페인에서 온 루시아와는 독일어 어학원에서 만났다. 독일 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다. 고등학교 선생님인 루시아는 코로나 여파로 재택근무를 시작했다고 했다. 오래만에 루시아와 통화를 하며 우리가 함께 공부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오늘 오전에는 전 남자친구와의 문자를 보았다. 과테말라에 다녀오고, 시험공부를 하고, 친구들과 함께 요리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오후에는 새로운 룸메이트 둘과 케익을 먹었다. 코로나 덕분에 매일 집에 있어야 하는 우리는, 여러 가지 추억을 만들게 될 것이다.
20년 전부터 나를 알던 친구와 통화를 하고, 7년 전 함께 공부했던 친구에게 안부를 묻고, 3년 전의 나의 문자를 보고, 지난주 처음 만난 룸메이트들과 대화를 했다.
혼자 저녁을 먹으며 창밖을 보았다. 고요한 저녁 하늘이 보였다. 코로나 여파로 일상이 정지된 요즘, 고요한 저녁 하늘을 보니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과거의 나에서 현재의 나로 시간 여행을 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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